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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언약과 아브라함(창12:10-20)


  왕이 명령을 내리면 그 명령을 취소할 때까지 유효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 한 번 말씀을 받으면 그 말씀은 계속해서 역사합니다. 아브라함이 창12:1 이하에서 하나님으로부터 말씀과 약속과 구원을 받았습니다. 다 받았는데, 하나님의 말씀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자꾸만 집을 떠나라고 하고, 또 무슨 가나안 땅으로 가라고 하니까, 이해가 잘 안되어지니까 머뭇거리기를 시작하였습니다. 여기에서 얼마나 많은 실패를 거듭하게 되어졌는지 모릅니다.
  오늘 우리가 여기서 예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예배 드리고 나가서 주님의 능력이 계속된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이것을 믿어야 하나님의 능력이 체험되어 집니다. 이 사실을 안 믿기 때문에 우리는 실패하기가 쉽습니다.
  이 하나님의 말씀이 이해가 잘 안됩니다. 홍해를 건너라! 여리고 성을 돌아라! 등의 말씀이 그냥 들어서는 이해가 안되는 겁니다. 그리고 기드온 300명을 가지고 수많은 연합군과 싸워라!는데 이해가 되어지지를 않는 겁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능력 보다는 환경에 먼저 눈이 가기 때문에 이해가 되어지지를 않는 것입니다. 이 아브라함이 그런 실수를 저지른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실수를 저지르기 쉽습니다.
  오늘 이 본문을 통하여 아브라함과 같은 실수를 저지르기 쉽지만 말씀을 붙잡고 이겨 나가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구원을 받았는데, 그 구원에 대하여 충분한 이해를 다 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1. 구원의 의미
   구원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죽음에서 부르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죽음의 자리에 있지 말고 떠나가라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그것이 이해가 잘 되어지지를 않았습니다.
  요한 번연이 쓴 천로역정에 보면, 구원받은 사람은 여행을 하는 것과 같다고 기록합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이 세상을 떠나는 것입니다. 왜냐면 죽음의 자리에서 떠나야 하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그같은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기는 하였는데, 이상하게 이해가 되어지지 않아서 자꾸만 지체하고 의심하면서 조금 조금씩 움직였습니다. 그런데 급기야는 아브라함이 실패의 진흙탕에 자꾸 빠져 들어가게 됩니다. 우리가 이렇게 되기가 너무 쉽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였다는 말은 하나님께 우리의 이름을 등록하였다는 말도 됩니다. 그러나 구원하셨다는 말은 부르셨다는 뜻입니다. 어디서 부르셨다는 겁니까? 지금 죽음과 실패의 자리에서 부르셨으니 거기서 나오라는 것입니다. 구원받았다는 의미를 바로 잘 알아야 합니다. 예수 이름을 가진 자는 그 이름이 하늘나라에 기록되는데 빼낼 사람이 없습니다.『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요 10:28)  구원받았다는 말은 단순히 하늘나라에 그 이름이 기록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지금 죽음의 자리에서 떠났다는 뜻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거기서 나와야 합니다. 집을 나오라는 말이 아닙니다. 죽음의 자리에서 나오라는 겁니다.
  이때 우리가 주의해야 될 일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왜 자꾸만 지체했습니까? 가족들 때문이었습니다. 가족은 우리에게 너무나 중요한 관계입니다. 그러나 가장 우리의 축복을 막을 수 있는 조건이 되기도 합니다. 틀림없이 아브라함의 출발을 막았던 사람이 주위에 많았습니다. 그 중에 제일 강하게 막았던 사람이 아브라함의 형이 분명합니다. 롯의 아버지겠지요. 그 형이 자꾸만 아브라함을 지체시킨 것입니다.
  “아니, 네가 여기서 나가다니? 여기서 생활이 안정을 얻고 잘 살고 있는데, 네가 어디서 무슨 음성을 듣고 그러느냐?” 하면서 틀림없이 가로 막고 나섰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창11:28절에 보면 그 형 하란을 먼저 불러 갔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막으면 하나님께서는 불러 가버립니다. 그 부친도 살아있었지만 할 수 없이 불러 갔습니다. 하란이라는 아브라함의 형을 하나님께서 먼저 불러 갔습니다. 그분이 바로 롯의 아버지입니다. 그래서 그 지역을 떠나게 만들었습니다.
  그때까지 아브라함은 아직도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주도권을 아버지 데라가 쥐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버지, 이제는 안됩니다. 따라 오십시오!” 하면서 가나안 땅으로 가야 되는데, 아버지가 가는데로 아브라함이 따라 갔던 것입니다. 강을 건너서 빨리 가야 되는데, 자꾸만 유브라데 강 변방으로 빙빙 돌면서 도착한 곳 이름이 하필이면 그 형 이름하고 같은 하란입니다. 이렇게 또한 그 아버지가 하나님의 축복을 자꾸만 못받도록 막습니다.
  우리가 잘 깨달아야 됩니다.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의 이름의 뜻은 `지체한다. 연기시킨다’는 뜻입니다. 이름 뜻 자체가 그렇습니다. 가족의 우리의 사랑의 대상이요, 친척은 우리의 사랑의 대상입니다만 잘못하면 우리의 우상이 됩니다. 가족과 친척이 우리의 우상이 되었다면 큰일 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잘 깨달아야 합니다. 이 아브라함이 과단성 있게 하지 못하고 자꾸만 지체 당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가족을 이끌고 가나안으로 가려고 하였지만 가지 못하고 하란에 도착하였던 것입니다. 하란이란 이름의 뜻은 ‘메마르다’는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지체하면 메마를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잘 되는 것 같아도 나중에 생수가 끊어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목마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돈 많은 사람들이 왜 자꾸 자살합니까? 지금 유럽에는 자살자가 극도로 늘어납니다. 선진국일수록 정신병자가 많습니다. 왜냐? 메마를 수밖에 없으니까요. 하나님의 명령, 축복을 거절하면 메말라집니다.
  파스칼은 말하기를 “세상의 갈증은 마치 사람들이 바닷물을 마시면서 갈증을 해소하려는 것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그 갈증이 해소되는 것이 아니라 자꾸만 더 심해져서 구렁텅이로 빠져들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하란이라는 지역에서 데라를 불러 갔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명령의 의심하고 더 지체하니까 두 죽음을 초래하고 말았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창12:1절에 “네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순종을 하기는 하였는데 적당히 하였습니다. 그냥 믿어버리면 되는데 안 믿으니까요. 하나님의 약속은 지금도 성취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구원받았다는 것은 단지 하늘나라에 호적만 올려져 있는 것 그 이상입니다. 우리가 구원 받았다는 것은 지금 하나님이 여러분을 불러 내어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어디까지? 하늘나라까지입니다. 지금 너 부름 받았으니까 딱지표 붙여놓고 너는 나중에 하늘나라에 갈 것이다! 이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구원한 사람은 그때부터 인도해서 하늘나라까지 데려 가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바로 여기서 의심을 하게된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과단성이 있게 출발해야 되는데 미적거렸던 것입니다. 아버지가 죽고난 뒤에 또다시 아브라함은 롯을 또 데려 갑니다.
  “너희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라!”고 말했습니다. 이유가 무엇이냐? 그것은 하나님이 더 잘 아십니다. 아브라함에게 그것이 필요 없기 때문에 떠나라고 하신 것입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이해가 안되어서 핑계거리가 많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나이가 75세요, 아들도 없고, 심부름할 사람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롯은 아버지가 돌아갔습니다. 그 어린 아이가 보호자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데리고 가는 것입니다. 핑계 있습니다. 마귀의 최대 선물은 핑계입니다.
  롯 이름의 뜻은 가리움, 덮음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이 롯이 다 막았습니다. 본인도 그렇지만 다른 사람에게까지 그랬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의심한다는 것은 보통 결과를 가져 오는 것이 아닙니다. 롯은 문제투성이 사람이 되었고, 불화를 조성하고, 나중에 포로되어 가지고 애를 먹입니다. 소돔 고모라 빠져서 애먹이고 합니다. 일평생 동안 아브라함을 애먹이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지옥에 관심이 없습니다. 여러분에게 관심이 있습니다. 지옥은 불신자들이 가는 곳입니다. 거기는 마귀를 집어넣고 불신자들을 집어넣는 장소입니다. 여러분은 안가도 되는 곳이므로 그렇게 연구를 안해도 됩니다.
  구원은 하늘나라 들어갈 뿐 아니라, 지금 죽을 환경과 불신 환경에서 부르시는 것입니다. 지체하지 말고 나오라고 하십니다. 죽음의 자리에서 실패의 자리에서 나와 버리는 것이 구원입니다.

2. 구원은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 속으로 들어오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을 보고 들어오라는 겁니다. 구원받은 사람은 부름받는 그 순간부터 하늘나라 가는 그 순간까지 단 일초라도 인도하지 않는 시간이 없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그 사실을 몰랐습니다. 그래서 의심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전능자로서 말씀의 약속을 이루시는 분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의심 때문에 억지로 가나안 땅까지 온 것입니다. 그런데 가나안 땅에 오자마자 기근이 들었습니다. 당장 밥을 굶게 되었습니다. 이럴 때에 우리는 무엇을 해야 됩니까? 기도해야 됩니다. `하나님, 하나님께서 명령하셔서 우리가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러니까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기다리겠습니다’ 이렇게 하여야 됩니다. 그런데 억지로 왔으니까 기근이 들자 금방 어디로 갑니까? 애굽으로 내려갑니다. 기근을 피하여 애급으로 갔는데, 가보니 분위기가 다릅니다. 무서운 땅입니다. 가만히 보니, 자기도 죽고 부인도 빼앗길 판이었습니다. 무법천지였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고민이 생겼습니다. 잘못하다가는 나도 죽고 부인도 빼앗기고 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차라리 내가 사는것이 낫겠다 싶어서 부인과 의논해서 `묻지 않으면 괜찮지만, 묻거든 누이라고 하라! 그래야지, 아내라고 하면 틀림없이 나를 죽이고 당신 빼앗아 갈 것이다’고 합니다. 아브라함은 일어나지도 아니한 일을 미리 당겨서 걱정하였던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지 않으면 미리 당겨서 걱정합니다. 가보면 될 것을 미리 걱정하는 겁니다.
  불신앙은 무서운 결과를 초래합니다. 생각도 오판할 뿐 아니라 없는 걱정을 미리 만들어 내어서 고생하는 것입니다. `혹시 이게 어떻게 될 것이 아닌가?’하면서 미리 걱정하는 것입니다. 걱정할 거 없습니다. 당하면 그때 당하면 하나님이 다 알고 계시기 때문에 염려할 것이 없습니다. 아브라함은 거의가 미리 당겨서 걱정하다가 실수하였습니다.
  미리 걱정해서, `애굽에 내려가보자’ 하여 내려갔는데, 가보니 죽을 것 같거든요. 죽지도 않았는데, 애굽사람이 시비도 걸지 않았는데 염려를 하였던 겁니다. 그러자 누가 묻습니다. `저 여자가 누구냐?’ `우리 부인이다’하면 될 것을 `우리 동생이다!’ 합니다. 그러니, `아, 그래 그렇지 않아도 왕후를 구하는데 되었네’하더니 대신들이 왕에게 가서 `아, 저기 아브라함이라는 사람이 이사 왔는데, 그 여동생이 너무 잘 낫습니다. 그냥 왕후로 데려오지요.’하자 어쩔 수 없이 부인을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처음부터 거짓말을 하였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그날부터 왕궁에 재앙이 쏟아집니다. 왕이 무슨 일인가 싶었는데 알아 보니 아브라함이 거짓말한 것입니다. 이래서 다시 사라를 돌려 보내게 됩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할때 하나님의 목적 속으로 들어가야 됩니다. 하나님은 목적과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무계획하신 분이 아닙니다. 천지만물을 운행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은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 사람은 계획이 없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계획 속으로 들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계획이 없다는 말과는 천지차이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에게는 목표가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목표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것이 신앙생활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에게 무슨 조직력이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조직력 속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래야 살아요.
  빌1:6에 보니까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고 그랬습니다. 주님 안에, 주님의 목적 안에 들아가야 됩니다. 우리가 휴거될 것인가? 말것인가? 하는 문제는 좀 있다가 있을 일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 버리면 얼마든지 휴거되고 남습니다. 천년 왕국을 계산할 것 없습니다. 주님 품안에 있으면 천년 왕국에 들어가게 되어 있습니다.
  미리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구원을 받아놓고 하나님의 목표 안으로 들어오지 않습니다. 그래놓고 고생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능력 안에 들어가버리면 거기는 천년왕국, 천국, 모두다 들어있습니다. 구원은 주님을 만나러 가는 것이고 믿음은 지금 주님을 누리는 것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이 내 안에 계시는 것입니다. 믿음은 성경에 관한 지식이 아닙니다. 믿음은 교회를 얼마나 다녔느냐가 아닙니다. 믿음은 내가 목사냐 장로냐 집사냐 권찰이냐 그런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내 안에 창조의 하나님, 구원의 하나님, 지혜의 하나님, 축복의 하나님이 계시는 것입니다.『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지어다 영원한 문들아 들릴지어다 영광의 왕이 들어가시리로다 』(시24:7) 그러므로 구원에 대한 재해석이 필요합니다. 전도란 무엇입니까? 내가 주님 안에 있으니까, 다른 사람들도 주님 안으로 들어오도록 하는 것이 전도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기도는 왜 합니까? 내가 주님 안에 있는 것을 확인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잠깐만 잊어버려도 우리는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는 나의 힘이요, 내 소망 되시니 구주 예수 떠나가면 죄중에 빠지리’라고 했습니다. 그러니 넘어질 수밖에 없지요.
  구원은 어떤 것이냐? 우리가 잘 깨달아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부르고 난 뒤에 가나안 땅으로 집어 넣을 것으로 생각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불러서 가나안 땅으로 가는데 모든 걸음을 다 인도하였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거기에 대하여 의심이 일어나니까 흔들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구원은 나중에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가는 것은 물론입니다만 이 땅에서 주님의 지시를 받는 것입니다. 주님이 지시하는 땅으로 가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우리는 구원 못받은 사람에게 가서 하나님의 능력을 증거해야 됩니다. 그래서 가나안 땅을 정복하라고 하였습니다. 왜 하필이면, 가나안 땅으로 가라고 합니까? 지구의 한복판 우상이 아주 많은 곳입니다. 알고보면 갈대아 우르보다 가나안 땅이 우상이 더 많습니다. 그리로 가라고 하였습니다.
  불러내어서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게 만들어서 가나안 땅에 가라고 하는 것입니다. 굉장히 좁은 땅입니다. 우리나라 강원도만 합니다. 산이 70%요, 거의가 다 돌밭입니다. 그리고 적으로 빙 둘러 쌓여있는 땅입니다. 왜 그리고 가라고 합니까?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주겠다는 겁니다.
  구원은 내세뿐만 아니라, 지금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구원은 지금 예수님을 통해서 성령 체험하는 것입니다.
  그게 구원입니다. 물론 하늘 나라갑니다. 그것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구원은 지금 여러분이 하나님의 능력을 받는 것입니다.
  구원은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죄에서 빠져 나오는 것입니다.
  구원은 여러분이 예수님을 통해서 사단의 권세, 흑암의 권세에서 빠져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자꾸만 못믿어서 미리 당겨서 걱정하고 그랬습니다. 구원은 지금 이루어진 사건입니다. 그러면서 영원이 연결되는 것입니다.
  구원받고 약속을 믿으면 그때부터 단 일초도 무효됨이 없이 이루어집니다. 틀림없이 계속 지속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실을 아브라함이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죽도록 고생하는 겁니다. 구원받은 자가 진탕에 빠져서 고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나가면 되는데, 자꾸만 그대로 가면 되는데, 그냥 그러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자기 머리 쓰다가 얼마나 많은 고난을 당합니까? 죽을 고비를 몇번 넘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도 완전히 죽을 자리에 가서 안 죽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깨닫게 하시는 것이지 죽이고자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이 있는데, 이 분이 얼마나 성령 충만한지 모릅니다. 별로 가진 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이 분이 호떡 장사를 합니다. 그런데 얼마 안가서 식당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식당이 또 얼마나 잘되는지 모릅니다. 기도해가면서 하니까요. 성령 충만받은 사람입니다. 그 동네에서 제일 큰 식당을 하게 되었습니다. 크게 성공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게 문제가 아닙니다. 문제는 어디 있느냐? 이 사람이 호떡 장사를 할때는 기도를 너무너무 많이 하였는데, 이 사람이 식당에 성공하니까 기도를 안합니다. 그때부터는 워낙 바쁘니까요. 그러다가 나중에는 주일예배도 바쁘다는 핑게로 안드립니다.
  교회에 잘 안온다고 하여서 믿음이 떨어진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대게 믿음 떨어지면 교회에 안옵니다. 그러니까 같은 말이지만 틀린 말이지요. 믿음이 떨어지면 다른데는 잘 가는데 교회는 잘 안옵니다. 믿음이 붙으면 자꾸 교회에 오게 됩니다. 그리고 능력이 자꾸 생깁니다. 그래서 핑계가 없어져 버립니다. 능력이 생기니까요. 그런데 그 사람이 완전히 망했습니다. 완전히 망해 실패하였습니다. 실패하고 나니까 그때부터 무엇을 하느냐? 그때부터 다시 호떡 시절에 기도하던 그 기도를 다시 시작합니다. 그래서 은혜를 회복했습니다. 날마다 하나님의 은혜를 찬송합니다. 이래가지고 나중에 훌륭한 장로님이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이 너무 지체하다가 손해를 보고서 드디어 순종하기 시작합니다. 그때부터 하나님이 역사합니다. 그때 조카 롯하고 싸우게 됩니다. 일일이 화근 덩어리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롯을 불러서 말합니다. “안되겠다, 우리가 이제 헤어지자, 네가 어느 쪽이든 선택하라!”고 하니, 얼른 소돔 고모라 땅을 선택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척박한 산을 선택하였습니다. 창13:14에 보면 “롯이 아브라함을 떠난 후에...” 하나님께서 뭐라고 합니까? “아브라함아, 네가 눈을 들어서 동서남북을 바라보아라! 네게 보이는 것을 전부 네 자손에게 주겠는데, 영원히 이르리라!”고 하였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축복합니다. “네가 종과 횡으로 다녀보라!”고 합니다. 그래서 나중에 어떻게 되었습니까? 세월이 지나갔는데, 아브라함이 완전히 거부가 되었는데, 롯은 망했습니다. 롯은 포로가 되어서 잡혀가 버렸습니다. 종으로 잡혀 갔습니다. 우리가 명심해야 될 것은 롯은 물질도 빼앗기고, 세상도 빼앗기고, 믿음도 빼앗깁니다. 우리가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능력을 가지고 있으면, 믿음도 얻고, 세상도 얻고 그럽니다.
  아브라함은 창13:18에 보니까 산에 올라가서 단을 쌓고 기도하고 예배하는 일에 열심이었습니다. 그런데 롯은 사업에 열심이었습니다. 그런데 롯은 거지가 되고 포로가 되어버렸는데, 아브라함은 거부가 되어습니다. 가병 318명을 이끌고 가서 전쟁에서 승리하고 조카 롯을 데리고 옵니다. 데리고 올때에 소돔 왕이 뭐라고 말합니까? 너무너무 감사해서, 금 은을 내놓고 가져가라고 합니다. 그럴때 아브라함이 뭐라고 말합니까? 창14:23에 내가 만약에 이것을 받으면 나중에 말하기를 아브라함을 내가 부자로 만들어 주었다!고 할 것이 아닌가? 하나님께서 알아서 나를 부자로 만들어 주실 것이므로 안받는다고 합니다.
  아브라함이 이제는 대단해졌습니다. 하나님을 확실히 믿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가만히 계시지 않습니다. 창15:1에 “이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이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아브람아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지금 아브라함에게 걱정거리가 무엇입니까? 자녀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이것을 잘 압니다. 여러분이 어디가 아픕니까? 하나님이 잘 아십니다. 저와 여러분의 문제거리를 잘 아십니다. 아브라함의 문제를 잘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를 이끌고 어디를 갑니까?
  밖으로 나가 가라사대,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그래서 창15:6에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라고 하였습니다. 말씀을 믿을 때에 의로 여기시고 도장을 딱 찍었습니다. 아브라함이 믿으니까 그 믿음을 보시고 의로 여기시고..라고 하였습니다. 여러분의 의가 무엇입니까?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 나의 의가 아니라 능력의 하나님을 믿는 것이 나의 의입니다. 아브라함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계속 헛구렁텅이에서 고생하다가 바뀌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계속 역사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게 됩니다.
  
  여러분이 구원받는 그 순간부터 하나님의 약속과 능력이 지속된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날마다 기도하는 사람이 그래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잠 안자고 기도하는 것이 그래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시간만 나면 엎드리는 것이 그래서 그러는 것입니다. 세상 것이 들어오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결국 이삭을 줍니다. 이삭이란? 이름의 뜻은 웃는다는 뜻입니다.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고 그 이름을 바꾸어 버렸습니다. 열방의 아버지라는 뜻으로 바꾸었습니다. 그런데 주위에서 얼마나 비웃었겠습니까? 그러던 중에 아들을 얻었으니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마지막으로 시험하십니다. 왜냐하면 세계를 맡기기 위해서입니다. 온 세계를 아브라함에게 맡기기 위하여 아브라함을 시험합니다. 왜냐면 믿음이 있어야 도장이 찍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시험합니까? “네 아들 바쳐라!” 그러자, 아브라함이 새벽애 즉각 순종으로 들어갑니다. 옛날 같으면 아브라함이 그러지 않습니다. 얼마나 소심하였으면, 자기가 맞아 죽을까봐 부인까지 팔아먹을 정도였습니다. 자기 목숨만 챙기던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믿음이 생기니까 하나님의 명령이 떨어지자 마자 새벽부터 순종합니다. 아들을 잡으려고 완전히 순종하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멈추시고 “내가 이제야 네가 나를 사랑하는 줄을 아노라!”하면서 창20장에 나타난 축복은 전 세계를 주는 약속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구원받았다는 의미를 잘 알아야 됩니다. 오늘 우리가 예배 드리고 나가면 그냥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예배 드리고 나갈 때에 오늘 받은 이 말씀이 일주일 동안 계속 역사하는 것입니다. 그게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 붙잡으면 그 말씀이 계속 역사합니다. 언제까지입니까? 영원히 역사합니다. 그래서 어떤 분은 신앙생활을 하다가 갈등을 안느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승리하시길 바랍니다. 아브라함이 시험을 이기고서 큰 축복을 받았습니다. 에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승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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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염유희 2006.03.27 11:03
    내 모든 것을 주께 감추지 아니하고 주께 의뢰하며 기도할때 주님은 나를 위해 예루살렘으로 앞서서, 십자가를 향하여 가주십니다
    하나님의 영광과 역사를 이루십니다
    나를 축복하십니다
    하나님의 전부를 주실 만큼 우리를 사랑하시는 신실하시는 주님... 사랑합니다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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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4 하나님의 필연적인 약속 관리자 2006.02.26 948
233 하나님의 큰 역사 - 유월절 관리자 2006.08.21 1306
232 하나님의 진노(롬 1:18) 최성주 2012.08.30 320
231 하나님의 절대성과 복음운동(사43:1-21) 최성주 2006.03.14 1392
230 하나님의 전신갑주(엡 6:10-18) 최성주 2010.12.02 729
229 하나님의 자랑은 인간?(창1:1, 26-28) 최성주 2010.09.20 643
» 하나님의 언약과 아브라함 1 최성주 2006.03.27 884
227 하나님의 소원(출6:1-8) - 새벽 최성주 2011.01.25 747
226 하나님의 사랑을 믿으세요(요3:16) 최성주 2011.01.19 519
225 하나님의 군대(출7:1-7)- 새벽 최성주 2011.02.16 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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