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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프란시스에게 제자가 물었습니다.
“선생님, 선생님이 기도할 때는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납니다. 그리고 선생님의 생애에는 놀라운 기적이 나타납니다. 선생님을 보면 성자 같은 인격을 느낄 수 있는데 그 비밀이 무엇입니까?”
그러자 프란시스가 이렇게 이야기했다고 합니다.

“그것은 간단한 거야. 하나님께서는 이 지구를 내려다보시고 사람을 찾고 계셨어. 가장 추한 사람이 누군지, 가장 불결한 사람이 누군지, 고통 가운데 고민하는 사람이 누군지, 가장 병든 인생이 누군지 찾고 계셨어. 그 하나님의 눈길이 나에게 머물렀어. 그 하나님께서 나를 보시고 난 후에 ‘저 사람이야. 저 사람을 붙들어 내가 한 사람의 생애를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가를 보여 줘야겠어’라고 생각하시고 나를 선택하신 거야.”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사람은 이 땅에서 뛰어나고 아름답고 잘못이 없고 지식이 많은 사람들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그를 믿고 따르며, 그의 뜻을 받아들인다는 의미입니다. 이는 우리가 과거 이기적인 죄의 삶에 대하여는 “아니요”라고 하며, 예수님에게는 “예”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값싼 은혜를 생각하는 사람, 곧 쉽게 예수를 믿으려는 사람이 많을수록 교회는 그 의미를 상실하게 됩니다. 그러나 제자가 되어 십자가를 지는 사람이 많을수록 교회는 하나님께 많은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값싼 은혜를 생각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쉽게 용서하고 쉽게 천당에 보내주는 할인 매장의 주인쯤으로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를 따라오려거든 네 소유를 포기하라"라는 비싼 대가를 요구하셨습니다.

신자는 열매가 빈약하고, 제자는 풍성한 열매를 맺습니다. 신자는 자기 혼자의 영혼을 겨우 건지나, 제자는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합니다. 신자는 그리스도의 사람이라 불리기는 쑥스러우나, 제자는 큰소리로 "그는 그리스도 인이다"라고 불릴 수 있습니다. 신자는 싼 값을 지불하며 살고, 제자는 비싼 값을 치르며 삽니다.

신자는 빈 어깨로 천국에 가려 하고, 제자는 남의 십자가까지 지고 천국으로 향합니다. 신자는 혼자 기뻐하고 혼자 만족한다. 그러나 제자는 눈물과 기쁨을 이웃과 함께 나눈다. 예수님께서는 '나를 존경하라'  '나를 예배하 라' '나에게 영광을 돌리라'라는 말 대신 '나를 따르라'라고 하셨습니다. 따른다는 것은 예수님의 행동을 따라 실천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처럼 나도 희생하고 예수님처럼 나도 사랑하고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셨으니 나도 나의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믿음이요, 예수 사랑입니다.

예수님의 공생애는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음으로 시작됩니다. 어떻게 하나님이 인간에게 세례를 받으실 수 있습니까? 아주 놀라운 일입니다. 인간의 몸을 입으신 예수님에게서 배울 수 있는 것은 겸손입니다. 다같이 “겸손 합시다. 겸손하겠습니다.” 이 일이 예수님의 공생애의 출발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죄를 용서 받았다는 증거로 세례를 받지만 예수님은 모든 인류가 죄 사함을 받는다는 의미로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모든 죄인들을 위하여 세례를 받으실 때에 하늘에서 음성이 들렸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라” 죄인을 미워하는 것은 쉽습니다. 용서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죄인을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죄인을 용서할 때에 기뻐하십니다. 다같이 “용서합시다.”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 두 번째 하신 일은 제자를 선택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일을 함께 할 수 있도록 제자들을 부르시고 그들을 교육하신 것입니다. 제자들을 부르시고 선택하시고, 교육하시고, 삶을 보여 주셨습니다. 완전한 사람을 부르신 것이 아니라 불완전한 사람을 부르셨고, 성숙한 사람을 부르신 것이 나이라 미숙한 사람을 불러서 하나님이 쓰시기에 합당한 사람을 만드셨다는 것은 우리에게 많은 격려와 위로와 희망을 줍니다.

왜 예수님께서는 제자를 먼저 선택하셨을까요?  선택이라는 것은 많은 것을 포기했고 버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결혼 하신 분들은 결혼 상대를 선택하실 때 남자 분들은 한 명의 여인을 선택하고 다른 여인들을 다 버리는 것입니다. 여성분들은 한 명의 남자를 선택하고 다른 남자 들은 돌처럼 버리는 것입니다. 다른 남자를, 다른 여자를 버리지 않고 결혼하는 것은 진정한 관계가 될 수 없습니다. 선택이란 하나를 취하고 다른 것은 버리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수 천 명의 사람들에게 관심이 있지 않았습니다. 열 두 명의 사람에게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삶은 이 열 두 명에게 집중 되었습니다. 선택된 이 열 두 명은 축복 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께 선택 받았다고 믿으시는 분들은 아멘 하십시다.

예수님의 삶은 재미있습니다. 30년을 준비하시고 3년 동안 일하셨습니다. 십일조입니다. 십분의 일을 위해서 십분의 구를 준비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모습에서 우리는 일 보다 준비가 중요하고, 말 보다 행동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배웁니다.

또 예수님의 3 년 동안의 사역을 보면 수많은 군중들과 시간을 보내지 않았습니다. 소수의 사람들과 3년의 시간을 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의 제자 훈련은 강의실이 아니라 그의 생활 속에서 삶을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수 천 수 만 명의 사람들의 인기와 환호 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으셨고, 새벽 시간에 하나님과 교제 기도를 하시며 하나님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셨고, 소수의 사람들에게 희망과 비전을 나누어 주시며 삶을 사셨습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전부였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십자가의 길을 걸으셨습니다. 넓고 화려한 길이 많이 있었지만 좁은 길을 선택하셨습니다.

우리는 요한복음 1장에서 제자들을 선택하시는 예수님을 보게 됩니다. 첫 번째 제자는 안드레였습니다. 안드레는 본래 세례요한의 제자였는데, 세례요한이 예수님을 소개하면서“그분은 말씀이요 나는 소리입니다. 나는 물로 세례를 주지만 예수님은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분입니다. 나는 그 분의 신발 끈도 풀 자격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입니다”라는 말씀을 전함으로 그의 제자 안드레를 예수님의 제자가 되게합니다. 예수님을 위한 삶이기 때문에 예수님에게 아까운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예수님의 두 번째 제자는 누구입니까? 베드로입니다. 베드로와 안드레는 형제입니다. 한 경우는 스승이 전도했고, 한 경우는 가족이 전도했습니다. 세 번째 제자는 빌립입니다. 빌립은 어떻게 전도했습니까? 경우가 아주 다릅니다. 빌립은 누가 소개해 준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빌립을 직접 선택하셨습니다. 그리고 네 번째 제자는 나다나엘은 빌립의 친구입니다. 친구가 전도한 것입니다.

오늘은 집중적으로 빌립이 예수님을 만나는 과정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예수님이 안드레를 부르실 때는 초청의 메시지가 아주 간단합니다. “와 보라”고 하셨습니다. 아주 단순한 말씀인데, 아주 설득력이 있고 의미있는 말입니다. 자심감이 없으면 하지 못하는 말입니다. 자신감이 있는 믿음생활을 하시길 축원합니다. 와 보라. 우리 집에 와 보세요. 자신감 있는 가정생활을 하시길 축원합니다. 우리 교회에 와 보세요. 자신감 있는 교회 생활을 하시길 축원합니다.

예수님의 와 보라는 부르심에 안드레는 즉각적으로 반응을 합니다. 참된 부름에는 참된 응답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즉각적으로 응답하는 이들은 복이 있습니다. 회사의 사장님이나 회장님이 부르면 즉각적으로 응답하지 않겠습니까? 하물며 하나님이 부르시는데 즉각적으로 응답하지 않겠습니까?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믿음으로 응답하시길 축원합니다. 우리는 죄인입니다. 죄인이 우리에겐 구원자가 필요합니다. 그 구원자는 우리와 달라야 합니다. 그는 죄가 없어야 합니다. 그는 하나님이어야 합니다. 그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사람이십니다. 안드레 앞에 있는 예수님은 아직 유명하지 않으신 분이지만 안드레는 예수님의 부르심에 즉각적으로 순종하였습니다.

주님이 여러분을 부르실 대에 즉각적으로 응답하시길 축원합니다. 안드레가 베드로를 예수님에게 데리고 오자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예언을 하십니다. 베드로를 만나자 마자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냐? 내가 장차 너를 게바로 만들어 주겠다고 하셨습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초청입니까? 예수님은 우리의 현재를 보시지 않습니다. 언제나 우리의 미래를 보십니다.

현재는 외롭고 절망적이고 고달픈 것입니다. 현재에 베드로가 자랑할 만한 것은 별로 없습니다. 그는 촌에 사는 어부일 뿐입니다. 싱싱하게 살아있는 고기를 바다에서 잡아서 장사하는 사람이지만 예수님이 보시는 베드로의 미래는 죄 중에 죽어 있는 사람을 살리는  제자가 되는 것입니다. 네가 지금은 갈리리 바다에서 고기를 잡지만 그것이 너의 직업이 아니라 너는 미래에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될 것이다. 할렐루야!

예수님은 여러분의 미래에 관심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미래를 보시고 축복하며 예언해 주십니다. 너는 게바가 될 것이다. 너는 반석이 될 것이다. 너는 정말 교회의 주춧돌이 될 것이라는 예언의 말씀을 해 주십니다.

빌립의 경우를 보겠습니다. 빌립의 경우는 특이합니다. 43절 말씀을 같이 읽겠습니다. “이튿날 예수께서 갈릴리로 나가려 하시다가 빌립을 만나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예수님이 빌립을 찾아가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과 빌립이 만나는 과정은 누구의 소개로 가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갈릴리로 가시다가 빌립을 만나게 되었고 빌립을 만나서 “나를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신구약 성경에서 “따르라”는 단어는 제자가 되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다분히 의도적이시고 직접적으로 빌립을 선택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43절을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첫째, 예수님이 빌립을 만나기 위해서 갈릴리로 가셨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둘째, 갈릴리로 가시는 도중에 우연히 빌립을 만났다고 볼 수 가 있습니다. 어떻게 해석하든지 결론은 하나입니다. 예수님이 의도적으로 빌립을 부르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의도적으로 여러분을 부르실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을 찾아가셔서 “나를 따르라. 너 나와 함께 가지 않겠니?” 이렇게 예수님이 초청하십니다.

아가서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신부여 함께 가자. 봄이 왔고 새 우는 소리가 들리는데 우리가 함께 가자”는 시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오셔서 나와 함께 가자고 하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함께 가자고 말씀하셨을 때 그것은 화려한 길이 아닙니다. 넓은 길이 아닙니다. 고난의 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우리를 그런 길로 초대하시는 것입니다.

세상에 수많은 길이 많고 화려한 길이 많은데 예수님은 우리를 좁은 길로 가자고 부르십니다. “나를 따르라” 오늘 우리는 그 음성을 듣고 예수님과 함께 제자의 삶을 결단하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지금까지 여러분이 꿈꾸고 원하는 길을 살아 왔다고 한들 어떻습니까? 지금까지 여러분이 살아오신 길이 만족하십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새벽부터 저녁까지 만인이 만인을 적으로 삼고 경쟁하고 투쟁하고 살아왔지만 우리의 삶이 얼마나 하무하고 피곤합니까? 여러분이 원하는 삶을 살아왔다고 할지라도 외롭고 허망하고 고독한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 안에 있지만 아직도 길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44절  빌립에 대한 정보가 있습니다. “빌립은 안드레와 베드로와 한 동네 벳새다 사람이라” 안드레가 예수님을 만나서 베드로를 소개했습니다. 안드레가 한 동네 사람이 빌립을 만나서 무슨 이야기를 하겠습니까? 나는 예수님을 만났다. 메시야(구세주)를 만났다. 참 기쁘다. 그 분이 나를 받아 주셨다. 그 분의 미소를 어떻게 설명할 수 없다. 그 분 앞에 가면 편안해 진다. 이런 이야기를 했을 것입니다.

베드로도 예수님을 만났는데 베드로는 한 수 더 떴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미래를 바라보시고 엄청난 예언을 하셨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듣고 있던 빌립이 나도 그 분을 만나고 싶다는 사모함이 있었을 것입니다. 너희들이 그렇게 그 분을 좋아하는데 그 분을 위해서는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 너희가 그 분을 따라다니는데 그 분이 누구인가? 이런 사모함이 중요한 것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목마름, 그리움, 사모함이 여러분의 가슴에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한편 안드레와 베드로는 예수님을 만날 때마다 “예수님, 우리 동네에 아주 좋은 친구 한 명이 있습니다.” 하며 예수님에게 빌립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아무 연관도 없었다면 어떻게 빌립을 불렀겠습니까?

아직 예수님을 믿지 않지만 여러분이 늘 기도해 주시고 축복해 주시는 분이 있다면 예수님이 그 분도 부르실 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이런 사실을 여기서 배우게 됩니다.

어느 부흥강사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어느 자매님은 남편을 구원시키기 위하여 매일 남편의 신발을 교회에 가지고 와서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 남편의 몸은 나오지 못하였지만 신발이라도 나왔습니다. 어서 교회에 몸이 나오게 하여 주옵소서!" 그렇게 기도한지 얼마후에 남편이 구원받았습니다.  이것이 베드로와 안드레가 빌립을 전도한 방법입니다.

빌립이 예수님을 만나자마자 그의 친구 나다나엘을 찾아가서 예수님을 소개했는데 어떻게 했는지 45절에서 보게 됩니다. 45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 이르되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

빌립이 분명하게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우리가 그를 만났다.” 그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를 이해한다. 이런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그를 만났다. 다같이 “우리가 그를 만났다”

빌립이 만난 예수님은 어떤 분입니까? 빌립은 세 가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 모세가 율법책에 기록한 그 분이고 여러 선지자가 예언했던 그 분이다. 둘째, 그 분은 요셉의 아들이다. 셋째, 그분은 나사렛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분명하게 알고 분명하게 믿고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도는 예수님을 만나고 체험하고 이해하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을 모르고 예수님의 제자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빌립이 소개했던 나다나엘은 어떤 사람입니까? 47절 “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가리켜 이르시되 보라 이는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이 말씀을 보면 나다나엘은 예수님께 소개할만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틱틱거립니다. 냉소적입니다. 진리에 대해서 편견이 많고 자기 생각에 대한 고집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이런 나다나엘을 예수님께 소개했을까 하는 것입니다.

나다나엘은 무엇을 금방 믿으려고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설득하기 굉장히 어려운 사람입니다. 나다나엘에게는 이런 성격상의 문제가 있지만 그러나 나다나엘의 내먄의 세계를 들여다 보면 굉장히 착하고 순진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서 그런 사람을 많이 보게 됩니다. 착하고 순수한 사람, 법 없어도 살 수 있는 사람, 인간미가 넘치고 정이 많은 사람. 이런 사람이 예수님에 대해서는 유독히 비판적이고 냉소적이라는 것이 문제입니다. 인간적으로는 너무 좋은데 가난한 사람도 돕고 훌륭한 사람인데 예수님만 믿으면 다 될 것 같은데 예수님만 안 믿습니다. 교회만 가면 완벽한데 교회를 가지 않습니다. 자기 직업에 충실하고 직장에서 존경을 받는데 예수님을 믿지 않습니다. 이런 분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정하고 존경하는데 예수님은 안 믿는 사람, 하나님은 믿는데 예수님은 안 믿습니다. 도 이런 분들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믿는데 교회는 안 가겠다는 사람. 나 예수님은 인정한다. 그런데 교회는 싫다는 사람들은 나다나엘 같은 사람입니다.

그리고 누구든지 절대적인 신앙을 가진 것에 대해서 혐오합니다. 상대적이고 관용적이어야 하지 왜 기독교만 진리냐고 합니다.

46절 “나다나엘이 이르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고 반응합니다. 문제는 이 나다나엘을 예수님이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는 것입니다. 놀라운 사실이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나다나엘의 이런 비판적이고 부정적인 기질을 문제 삼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 것들을 많이 문제 삼습니다. 47절 “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가리켜 이르시되 보라 이는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고 하십니다. 나다나엘의 현재를 보시지 않고 미래를 보았습니다. 다같이 “현재를 보지 날고 미래를 봅시다” 나다나엘의 겉모습을 보지 않고 속마음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어렸을 때 상처를 받고 자란 사람들은 성격이 이상할 수 있습니다. 매 맞고 자란 사람, 고무신으로 뺨 맞고 자란 사람, 삽으로 매 맞고 자란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부모님에게 그런 대접을 받으며 자랐기 때문에 성장해도 그런 성격이 그대로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대개 마음이 착해서 다른 사람은 잘 도와줍니다.

예수님은 이런 나다나엘을 보시고 “저 사람이 참 이스라엘 사람이구나. 저 사람 속에는 간사한 것이 없다”고 하십니다. 예수님의 놀라운 통찰력, 사람 보는 눈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 주변에 이런 분이 있다면 포기 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그 사람이 하는 말에 시험에 들지 마시기 바랍니다.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가 있느냐?” 이렇게 말해도 상처 받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 있는 진실함, 순수함,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본 것입니다. 예수님은 논쟁하지 않았습니다. 받아들였습니다. 축복하고 인정하고 격려하였습니다.

48절 “나다나엘이 이르되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을 때에 보았노라” 충격은 나다나엘이 받습니다. 예수님이 어떻게 나를 아셨는가? 빌립이 너를 소개하기 전에 이미 너를 알고 잇었다. 네가 오기 전에 네가 나를 찾기 전에 나는 너를 찾고 있었다. 너는 내 것이다. 네가 그렇게 험환 인생을 살았을지라도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너도 진실하게 살고 싶고, 정직하게 살고 싶고, 아름답게 살고 싶은 욕망이 있는 것을 내가 안다. 그리고 정말 너는 양심이 있는 사람이다. 주님은 우리를 이렇게 대우해 주십니다.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예수님은 우리를 그렇게 봐 주십니다. 사실 우리는 마음이 시꺼먼데도 좋게 봐 주시는 것입니다. 고약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조금만 잘못해도 100배 확대해서 너는 피가 나뻐! 너는 본질이 고약해! 이렇게 믿어주지 않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믿어 주십니다. 예수님은 현재를 보지 않고 미래를 보십니다. 할렐루야!

여러분, 예수님이 우리를 믿어주지 않았더라면 우리가 어떻게 살겠습니까? 늘 불평하는 우리의 모습 그대로를 평가했더라면 예순임 앞에 어떻게 얼굴을 들고 살겠습니까? 우리는 부족하고 실수가 많은 사람들이지만 우리가 변할 것을 믿으셨습니다. 여러분이 변할 것을 믿습니다. 여러분의 미래는 변할 것입니다. 새 사람이 될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제자를 부르시는 모습입니다.

여러분이 전도하려는 사람이 예수님을 비판하거나 교회를 비판해도 절대로 논쟁하지 마십시오. 그를 축복하고 끝까지 예수님 앞으로 인도하는 것을 포기하지 마십시오. 그 사람이 베드로가 되고 안드레가 되고, 그 사람이 빌립이 되고, 그 사람이 나다나엘이 되는 것입니다.

그들은 변할 수 있습니다. 그들의 미래는 변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예수님이 제자들을 보는 관점이었습니다. 그러나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굉장한 대가를 치루셨습니다. 속기도 하시고, 가롯 유다에게 죽임을 당하기도 하셨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끝까지 기다리셨습니다. 이런 제자들이 언제 변하였습니까? 십자가를 보곧고 변하지 않았습니다. 부활을 보고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 성령을 받고 변화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받고 변화되었습니다.

49절 “나다나엘이 대답하되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 여러분이 전도하시는 사람이 이런 고백을 하기를 바랍니다. 나다나엘은 착한 사람이었습니다. 정직한 사람이었습니다. 이제 그 사람이 자기의 거친 말이 아니라 속마음을 아시는 예수님께 선생님,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입니다고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말을 듣고 두 가지를 축복해 주셨습니다. 50-51절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너를 무화과나무 아래서 보았다 하므로 믿느냐 이 보다 더 큰 일을 보리라 또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 하시니라”

할렐루야! 여러분에게 이런 일들이 일어 날 줄로 믿습니다. 기도하는 대로 됩니다. 믿는 대로 됩니다. 나이 걱정 마시고, 건강 걱정 마시고, 돈 없는 것 걱정 마세요. 여러분의 믿음이 중요한 것입니다. “이 보다 더 큰일을 보게 되리라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 하시니라”

여러분, 주님은 우리를 부르십니다. 나를 따르라. 우리 주님께 영광을 돌려 드리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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