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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목사님이 결혼식 주례를 가는데 시간이 늦었답니다. 80Km 구간이지만 시간을 맞추기 위해 120㎞로 차를 몰다가 교통 경찰관에게 걸렸답니다. “결혼식 주례 시간 때문이라고 한 번 보아달라고 했답니다.” 그러나 경찰관은 보아 주지 않고 범칙금을 물게 했답니다. 그런데 목사님이 옆에 보니까 차들이 자신보다 더 쌩쌩 달리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억울해 경찰관에게 말했답니다. “아니!!! 다른 차들도다 속도위반인데 왜 나만 잡아요?" 그 때 경찰관이 물었답니다. “목사님 낚시 해봤어요?” “낚시요?....... 물론이죠!!” 그러자 태연한 얼굴로 경찰관이 "그럼 목사님은 낚시터에 있는 물고기를 몽땅 다 잡아요?". “걸린 고기만 억울한 겨”라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다보면 때로는 과속으로, 때로는 실수도, 때로는 능력부족으로, 때로는 이유도 모르고 원치 않는 일을 만날 수 있습니다.  시험을 보았는데 원하지 않는 시험 점수가 나올 수도 있고, 자녀를 결혼시켰는데 이혼의 위기를 만날 수도 있고, 사업을 하였는데 부도의 위기를 당할 수도 있고, 취업을 하였는데 직장을 그만 두어야 할 역경이 만날 수 있고, 아직은 살날이 더 기대되는 나이인데  죽음의 위기에 처할 수도 있습니다.

이럴 때 그 역경을 극복하고 일어서는 사람이 있고 그 역경 앞에 스스로 포기하고 무너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역경지수(AQ)란 말이 있습니다. 미국의 커뮤니케이션 이론가 폴 스톨츠 박사가 만든 말로 21세기는 IQ나 EQ보다 AQ(Adversity Quotient)가 높은 사람이 성공하는 시대가 될 것이라고 합니다.

수많은 역경에도 굴복하지 않고 끝까지 도전하여 목표를 성취하는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 성공한다는 것입니다. 그는 가던 길을 가지 못하게 하고, 하던 일을 이루지 못하게 하는 역경을 만나면 사람은 세 가지로 반응한다고 말합니다.

등반에 비유하여 3가지 타입을 말하는데
첫째는 쿼터(Quitter 포기하는 사람)로 힘든 문제나 역경이 다가오면 도망가거나 포기하는 사람입니다.
둘째는 사람들의 60-70%를 차지하는 캠퍼(Camper 안주하는 사람)로 역경 앞에서 뚜렷한 대안을 마련하지 못하고 현상유지 정도로 적당히 안주하는 사람입니다.
셋째는 클라이머(Climber 정복하는 사람)로 시련이 다가올 때 자신의 모든 능력과 지혜를 동원하여 기어코 정복하고 마는 사람입니다. 클라이머는 자신만 역경을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동료들을 격려하고 북돋우면서 함께 정복한다고 합니다.

행복한 사람은 역경이 다가 올 때 역경을 정복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는 우리 신앙인은 어떤 역경이 다가와도 믿음으로 정복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어떻게 수시로 다가오는 역경을 정복하며 행복한 생활을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역경이 다가 올 때 포기하지 말고 예수님이 역경을 순경으로 바꾸어 주시는 분으로 믿고 예수님 만나 문제를 해결 받아 행복한 가정을 만들어야 하겠습니다.

요한복음에는 사도 요한이 일곱 가지 기적을 선별하여 기록하였고 이를 가리켜 ‘표적’이라는 독특한 표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는 이러한 기적에 — 무엇인가를 보여 주려고 하는 — 어떤 의도가 있다는 것을 가리킵니다. 사도 요한은 이에 대해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도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요 20:30~31)라고 말했습니다.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영생을 얻게 하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역경은 예고 없이 찾아옵니다. 오늘 성경에는 태어나면서부터 역경 속에서 태어난 사람이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38년 된 병자를 치유하시는 표적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38년 이라는 긴 시간에서 알 수 있듯이 이 병자의 삶은 완전한 절망 그 자체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사람을 찾아와 이렇게 질문하셨습니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예수님께서 이렇게 질문하신 까닭은 그를 치유하여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가 38년 동안 해결하지 못해 고통 받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여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 가운데에도 오랜 시간 동안 해결되지 못한 문제를 가지고 있는 분이 있을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 여러분이 가진 각양각색의 문제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해결되는 기쁨을 맛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인생은 여러분이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도자가 되신다는 사실을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이를 통해 하나님의 큰일을 행하고 반드시 승리를 얻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베데스다의 현장

그 후에 유대인의 명절이 되어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니라 예루살렘에 있는 양문 곁에 히브리 말로 베데스다라 하는 못이 있는데 거기 행각 다섯이 있고 그 안에 많은 병자, 맹인, 다리 저는 사람, 혈기 마른 사람들이 누워 [물의 움직임을 기다리니 이는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움직이게 하는데 움직인 후에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됨이러라] (요 5:1~4)

예수님께서 유대인의 명절을 맞아 예루살렘 성의 북편에 위치한 양문을 통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습니다. 양문은 말 그대로 양의 문입니다. 당시 희생 제물로 사용되기 위한 양들이 들어갔던 문이라 하여 ‘양문’이라는 별칭이 붙었습니다.

그런데 이 양문 근처에 베데스다라는 연못이 하나 있었습니다. 베데스다는 히브리어로 ‘긍휼(은혜)의 집’이라는 뜻을 갖습니다. 이 연못가에는 다섯 개의 행각이 있었는데 그 안에는 각종 질병에 걸린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이 베데스다에는 하나의 전설이 있었습니다. 천사가 내려와 연못에 고인 물을 솟구치게 하는 때가 있는데 이 때 가장 먼저 연못에 들어가면 어떤 병이든지 낫게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베데스다 연못에는 이런 미신과도 같은 소문을 사실로 믿고 물이 솟구치기만을 기다리는 불치병 환자들로 넘쳐나고 있었습니다.

얼핏 보면 이 베데스다 연못에 구원과 치유가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또 다른 절망과 좌절을 안겨주는 현장일 뿐입니다. 이 38년 된 병자는 예수님께 주여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요 5:7)라고 하소연을 합니다. 이를 보면 이 연못의 전설이 얼마나 큰 모순을 가지고 있는지 알게 됩니다.

정말 중병에 걸린 사람은 몸을 제대로 가눌 수조차 없습니다. 그러니 연못에 맨 처음 들어가는 사람이 낫는다면 그 사람은 아마도 몸이 덜 아픈 사람일 것입니다. 본문에 요한이 언급한 맹인, 다리 저는 사람, 혈기 마른 사람(마비 환자)은 결코 자력으로는 그 연못에 가장 먼저 들어갈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이 얼마나 모순된 상황입니까!

영적으로 볼 때 이 베데스다 현장은 율법 앞에 서 있는 인간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세상 종교 앞에서 구원을 구하고 있는 인간의 허망한 모습을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아직도 인간의 힘으로 무언가 할 수 있다고 믿는 세상의 모습을 아주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세상에 나가보면 이러한 영적 상태를 아주 잘 볼 수 있습니다. 율법은 인간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종교를 통해서는 영생을 얻을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갈 2:16) 하면 할수록 더 큰 좌절과 절망을 안겨 주는 것이 인간의 방법입니다. 결국 더 큰 갈증만 남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38년 된 병자도 이런 현장의 실상을 우리에게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자신의 방법을 붙잡고 있으면 답이 나오지 않습니다. 자신의 방법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방법을 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불신 현장에는 자기 생각 속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이 너무나 많습니다. 특히 영적 부분에서 더욱 그렇습니다. 오답을 가지고 있으면서 그것이 해답인양 착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들은 스스로 결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합니다. 38년 된 병자를 찾아가신 예수님처럼 여러분이 그들을 찾아가 인생의 정확한 해답을 전하시기 바랍니다. 이를 통해 성도 여러분이 하나님의 큰일을 행하고 반드시 승리를 얻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문제의 해결자

거기 서른여덟 해 된 병자가 있더라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래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요 5:5~7)

예수님께서 38년 된 병자를 친히 찾아가셔서 질문하셨습니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그런데 이 사람의 입에서 “네, 낫고 싶습니다.”라는 대답 대신 다른 사람에 대한 원망과 불평이 터져 나왔습니다. 자기가 먼저 베데스다 연못에 들어가면 병이 나을 텐데 다른 사람이 먼저 들어가서 지금까지 고통 속에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사람은 예수님이 어떤 분이시진 전혀 몰랐습니다. 여기서 사용된 ‘주여’라는 표현은 성인 남성에 대한 존칭어일 뿐이지 메시야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한 젊은 청년이 와서 낫기를 원하느냐고 질문하니까 자신을 베데스다 연못에 넣어 주기를 기대하면서 이렇게 말했던 것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 (요 5:8~9) 예수님께서는 이 병자에게 더 이상의 설명 없이 단도직입적으로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이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우리는 지난 주일 믿음이 약한 정치인이 병들어 죽게 된 아들을 살려 달라고 예수님께 간청을 할 때 예수님께서 이 정치인의 죽어가는 아들을 살리신 것을 보았습니다. 고장난 세상, 죽어가는 세상을 살리시기 위하여 예수님은 오셨습니다.

38년 동안 병을 앓고 있는 이 환자는 예수님에 대한 어떠한 믿음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병이 나았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는 왜 이런 표적을 행하신 것일까요? 그것은 바로 인생 모든 문제 해결의 키가 예수님께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신앙생활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뜻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방향으로 모든 것을 다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어떤 문제가 있습니까? 그것을 여러분이 쥐고 있지 마시기 바랍니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벧전 5:7),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빌 4:6~7) 결국 문제 해결의 키는 우리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습니다. 오직 그리스도만 바라볼 때 그리스도께서 해결하여 주십니다.

요즘은 최첨단 기술이 발달하여 거의 진짜처럼 보이는 위조화폐를 만들어냅니다. 이에 따라 위조화폐를 가려내는 감별사의 역할이 커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이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위조화폐 감별사는 수많은 종류의 위조화폐에 대해 공부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이들은 위조화폐는 전혀 거들떠보지도 않고 오직 진짜 화폐만을 연구한다고 합니다. 계속해서 진짜 화폐만을 보고 또 보다보면 가짜는 금방 알아낼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문제 해결을 위해 이것저것 다양한 방법을 동원하는 인본주의적 해결책은 아무런 필요가 없습니다. 모든 문제 해결의 키는 참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베데스다 연못과 같은 문제의 현장에서 참된 문제 해결의 키는 ‘예수 그리스도만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만이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예수님이 주도하는 삶을 살아가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결론] 이제 올해가 한 주간 남았습니다.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멋지게 마무리하시기를 바랍니다. 거창하게 시작해놓고 용두사미식으로 끝내지 말아야 합니다.

딤후 4:7~8을 보면 바울은 “나는 내 인생의 마무리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러므로 나를 위해 생명의 면류관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라고 고백합니다. 바울은 그야말로 마지막을 멋있게 마무리 했던 인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인생의 주도자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제부터는 이 언약을 붙잡고 새 힘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베데스다 연못과 같은 현장에서 방황하는 불신 영혼들에게 여러분이 찾은 해답과 응답을 증거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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