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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는 많은 기적들이 나타나 있습니다. 이런 기적들은 구약 시대에도 있었고 신약시대에고 있었고 오늘날에도 나타납니다.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함없으시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20대가 다르고 30대가 다르고 40대 50대가 다릅니다. 잡을 수도 멈출 수도 없는 세월 속에서 사람의 힘은 점점 약해져 가지만 창조주 하나님은 조금도 변함이 없으십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능력 속에서 새 힘을 얻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은 오병이어 즉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약 2만 명을 먹인 기적에 대한 말씀으로 마태 마가 누가 요한 복음서에 모두 기록되어 있는 유명한 사건입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은 셀 수 없이 많습니다. 그러나 요한복음에는 일곱 개의 기적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기적 안에는 예수님께서 나타내고자 하시는 영적인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우리는 요한복음에서 3개의 기적을 공부했습니다.
1.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셨습니다. 물과 포도주는 완전히 다른 성분입니다. 물 자체로는 포도주가 될 수 없지만 창조주 되시는 예수님은 물처럼 맛 없는 인생을 포도주처럼 기쁨이 넘치는 인생으로 변화시키시는 분이었습니다.
2. 왕의 신하의 아들 병을 멀리서 고쳐 주셨습니다. 거리가 문제가 아닙니다. 믿음이 문제입니다.
3. 38년된 병자를 고쳐주셨습니다. 희망이 없는 사람, 원망과 불평만 가득한 사람, 믿음도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일어나 걸어가라고 하셨습니다.  종교에는 희망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생명이 없습니다. 종교에는 사람을 일으키고 무덤을 열고 나오라고 할 만한 능력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그 종교로 지쳐있고 쓰러져 있는 38년된 병자에게 일어나 걸어가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원하시는 것은 희망을 넘어 생명, 생명을 넘어 영생입니다.

오늘은 4번째 기적, 오병이어의 기적입니다. 1-2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그 후에 예수께서 갈릴리 바다 곧 디베랴 바다 건너편으로 가시매 큰 무리가 따르니 이는 병인들에게 행하시는 표적을 봄이러라”

갈리리는 베드로와 안드레와 빌립의 고향이었습니다.  큰 무리가 예수님을 따랐다고 하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기적을 보고 예수님을 따르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을 보고 따르는 것이 아니라 기적을 보고 따르는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아직 참 믿음이 없었습니다.  그들에게 믿음이 생길 때까지 그들은 보호를 받아야 하는 <큰무리> 많은 사람들이었습니다.

3-4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산에 오르사 제자들과 함께 거기 앉으시니 마침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유대인의 대표적인 명절은? 유월절입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은 유대인의 대표적인 명절이 유월절이 가까이 온 시점에 일어났습니다.  이 유월절 전에 세례 요한이 순교를 당하였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세례 요한에게 큰 희망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가 참수 당하자 이제는 예수님 외에는 소망이 없다고 여기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자신들을 로마의 압제로부터 해방시켜 줄 유일한 대안이라고 생각하여 예수님이 가시는 곳마다 구름떼처럼 몰려들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많은 무리가 몰리자 닥쳐 온 문제가 바로 이들을 먹여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5-6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눈을 들어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 하시니 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지를 아시고 빌립을 시험하고자 하심이라”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휴식을 방해하고 필요한 시간을 앗아가고 있는 한 두 사란이 아니라 큰 무리들에게 화내지 않으셨습니다. 도리어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자신의 삶을 먼저 내세우지 않는 예수님의 희생적인 삶은 모든 사람들이 배워야 할 모범적 행동이었습니다.

예수님께 나아온 무리들에게는 먹을 것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그 곳은 곳은 빈 들이었습니다. 음식을 구할 곳이 없었습니다. 문제만 보면 문제가 풀리지 않습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믿음을 알고 싶으셨습니다. 베드로와 안드레와 빌립의 고향이었던 그 지역에서 가장 지역 형편과 계산이 빠른 빌립에게 질문을 던지셨습니다.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 그리고 예수님은 아마 빌립의 인간적인 대답을 예상하고 있으셨을 것 같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빌립은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라고 답을 하였습니다. 그 지역 출신이었던 빌립은 자신의 생각과 지식으로 그 곳에서 음식을 구할 만한 곳이 없을 뿐 아니라 계산을 해봐도 모든 사람들에게 조금씩만 먹인다하여도 이백데나리온이라는 많은 돈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예수님께 상황을 정확히 분석하여 말씀드렸습니다. 그 당시에 한 데나리온은 노동자의 하루 품삯이었습니다. 안식일을 제외한 6일을 일한다 하더라도 8개월간의 임금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 많은 사람들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을 구하기도 어렵고, 또 사서 주기도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예수님께서 아시지 못하셨을까요? 뻔히 아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치에 밝은 현실주의자 빌립에게 물어보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예수님께서는 빌립에게 사람의 계산과 통계의 결과를 듣자고 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막 8: 29) 라는 질문을 믿음의 시험으로 가져가셨던 것입니다. 요한복음 내에서만도 이 오병이어의 기적 전까지 세 번이나 놀라운 표적들을 주님께서는 행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장정만 오천 명이요, 어린아이, 여자, 노인들까지 합하면 거의 만 명에 가까운 이들을 배불리 먹이실 능력이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빌립에게 기적을 행하기 전에 질문을 하실 것일까요?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빌립이 갈릴리의 가나안에서 예수님의 첫 표적을 바라보았고 수많은 병자들이 낫는 것을 보았으나 그분을 구약에 약속된 메시아로 믿지 못하고 있었던 것을 아셨던 것입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교회에 나오고, 예배도 드립니다. 그러나 거대한 문제 앞에서 나는 내 지식, 경험, 능력으로만 그 문제를 풀려고 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빌립이 그런 사람입니다. 계산이 빠른 사람입니다. 자신의 머리로 모든 문제를 풀려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많은 제자들이 있지만 예수님께서는 빌립에게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고 묻는 것입니다.

이 말은 단순한 질문이 아닙니다.  “너 스스로 생각해보아라. 너의 힘과 지식으로 이 사람들을 다 먹일 수나 있겠느냐?”라고 물어보시는 것입니다.

이 빈들에서 네 힘과 지식으로 이 문제를 풀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아무리 노력하고 아무리 답을 구해도 안 되는 일들이 우리들의 인생 안에 너무나도 많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우리의 연약함과 부족함을 고하고 주님께 의지하며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8~10절을 읽겠습니다.
“제자 중 하나 곧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가 예수께 여짜오되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졌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삽나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이 사람들로 앉게 하라 하신대 그곳에 잔디가 많은지라 사람들이 앉으니 수효가 오천 쯤 되더라”

이때 안드레가 등장합니다. 그는 시몬이라 불리는 베드로의 동생이었습니다. 그는 세례요한의 제자였다가 주님의 부르심을 받고 주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메시아의 시대가 온다는 것을 믿고 있던 사람이었고 예수님이 메시아이심을 가장 먼저 경험하였던 사람입니다. (요1: 40, 41)

그는 빌립보다 적극적인 방식으로 예수님께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는 한 아이를 데리고 나왔습니다. 누가복음 11: 5에서는 한 사람의 한 끼의 식사를 해결하기 위하여 빵 세 덩어리를 빌리고자 하였던 것으로 보아 그 소년은 한 끼분의 식사를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한 아이”를 어린 아이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헬라어 “파이다리온” 이라는 뜻은 그 당시의 “젊은이” 혹은 “심부름 하는 소년” 등으로 해석되기 때문입니다. 그 한 아이는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에 유대인들은 보통 주식으로 밀가루로 만든 빵을 먹었으며 보리로 만든 빵은 가난한 사람들의 주식이었습니다. 이때 두 마리의 물고기는 소금에 절이거나 구운 것으로서 까칠한 보리떡을 잘 먹을 수 있도록 반찬으로 사용되었던 것입니다. 안드레는 다섯 개의 보리떡과 두 마리의 생선을 주님 앞에 내놓으며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습니까?” 하고 걱정을 하였습니다.

여기 안드레는 한 아이의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누구에게 내어 놓았습니까? 몇 개를 내어 놓았고, 그 것이 무엇인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아주 작은 것을 창조주 하나님의 손에 믿음으로 드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의 보리떡과 물고기가 그냥 그 소년의 손에 있으면 그는 그저 가난하고 배고픈 인생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예수님께 드림으로 창조주 기적의 주님과 함께 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빌립은 지식과 경험으로 예수님 앞에 서 있지만 그 가난한 소년은 빌립에게는 없는 믿음과 헌신으로 예수님께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일하시기 시작하셨습니다.
사람들로 하여금 자리를 앉게하라 하시더니, 11절 함께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아 있는 자들에게 나눠 주시고 물고기도 그렇게 그들의 원대로 주시니라”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들고 하늘을 우러러 감사기도를 드린 후에 떼어서 제자들에게 주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은 거기에 모여 있는 군중들에게 예수님께서 떼어주신 보리떡과 물고기를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받아먹은 군중들은 원없이 먹고 또 원없이 배부름을 경험하였습니다. 이런 즐거움을 경험한 사람은 마태복음 14장 21절에 보면 여자와 아이를 제외하고도 오천명이나 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배부름이후에 어떻게 되었을까요?
예수님은 먹고 남은 보리떡과 물고기의 조각들을 버리지 말고 거두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러자 그렇게 모은 조각들이 열두 바구니에 가득찬 사실을 모두가 알게 되었습니다. 이 열두 바구니라는 것은 예수님이 자신의 모든 백성의 필요를 채우고도 남은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상징입니다. 또한 모아진 떡과 고기 조각들은 자신의 백성들이 자신 안에 있으면 결코 잃어버린바 되지 않고 보호하시며 책임지신다는 증거이신 것입니다.

이 사건을 통해 우리는 예수님의 믿음의 시험을 접한 두 사람의 태도를 생각하게 됩니다. 예수님의 제자였던 빌립과 안드레는 이 오병이어의 사건에서 정말로 다른 입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빌립은 가장 합리적이고 계산적인 자세로 이 사건을 바라보았고, 그래서 예수님께서 “어디서 떡을 사서 사람들에게 먹일까?”라고 이야기 했을 때, 이백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할 것이라는 너무나도 인간적 한계를 드러내는 답을 낼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안드레는 달랐습니다. 한 아이의 가난하고 초라해보이는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를 가지고 왔습니다. 그리고 겸손한 마음으로 모든 것을 다 드리면서도 “이 많은 사람들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니까?”라며 예수님의 하실 행동을 기대하였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그로 말미암아 우리는 영생의 축복을 받는 것도 압니다. 영생의 축복을 받아야 이 세상에서도 저 세상에서도 하나님의 축복 안에서 살 수 있다는 것도 압니다. 그래서 우리는 교회에도 나오고 예배도 드리고 헌금도 드리며, 심지어 전도와 선교, 구제까지 기꺼이 행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지식과 경험과 능력만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나만 의지하면 문제가 풀리지 않습니다.

기적을 행하실 주님을 의지하여야 합니다. 창조주 하나님,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덕 다섯 개로 2만 명을 먹이시는 예수님을 의지하여야 합니다.

머리와 지식으로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큰 문제 죄와 죽음과 저주와 사단의 문제는 머리로 풀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여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2013년 마지막 주일 예배입니다. 아직 풀리지 않은 문제가 있습니까?다 주님께 내어놓으시기 바랍니다. 문제든, 슬픔이든, 기쁨이든 간에 다 창조주 예수님의 손에 드리시길 바랍니다. 그리한다면 주님께서는 그것을 받으시고 축사하시고 문제를 해결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께 드린 것은 가난한 자의 보리떡과 물고기이지만 예수님은 2만명의 음식과, 열두 광주리에 가득가득 더 좋은 것으로 남겨주실 것입니다.

기도: 하나님,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축복과 응답이 되게 하옵소서. 머리로만 살지 않고 믿음으로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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