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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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구호들이 많이 있습니다.
사우나(사랑과 우정을 나누자)
당나귀(당신과 나의 귀중한 만남을 위하여)
너나잘해(너와 나의 잘 나가는 새해를 위하여)
당신멋져(당당하고 신나고 멋있고 져주며 살자)
고도리(고민과 도전을 즐기는 리더가 되자)
해당화(해가 갈수록 당당하고 화려하게)


도시 생활과 이민 생활의 전쟁과 같은 시간 속에서  나를 멋지고 아름답게 만들어 가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매일 풀어야 할 문제들 가운데  우리의 마음속에는 참과 거짓, 종교와 진리, 욕심과 사랑,
이기주의와 이타주의, 성공과 실패, 천국과 지옥의 시소놀이가 끝나지 않습니다. 결국 나의 적은 나입니다.

백세를 사는 사람이 많지 않지만  사람들은 헛되이 천년계획을 세운다는 말이 있습니다.
매일 무엇을 따라 살아야 하느냐는 갈등이 있습니다. 조그만 마음을 정복하고 다스리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 같습니다.

마음을 비운다는 말을 합니다. 내가 하는 일이 천국을 만드는 것 같지만 누구든지 욕심을 버리지 못하면  어느새 지옥 같은 상황이 벌어집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말은 쉬운 고백이 아닙니다. 세상 사람들과 다르게 산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움이 없이 살겠다는 고백입니다.

사람들은 신, 곧 하나님을 찾지만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왜냐하면 진정으로 신을 찾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욕심을 신으로 착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구약의 선지자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하나님을 믿으라고 외쳤지만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믿으려면 욕심을 버려야 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였지만 사람들은 그 말씀을 듣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 말씀은 자신들이 원하는 말씀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욕심을 이루는 것입니다.

신약에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오셨지만 사람들은 그를 신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신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하나님이 아니라 욕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하나임의 아들로서 참 신이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습니다. 욕심은 살리고 예수님을 죽인 것입니다. 욕심을 죽이지 못한 사람들이 신을 죽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여전히 신을 찾고 있습니다. 그들의 욕심을 채워줄 신을 찾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고 삼일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참 신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그를 죽인 유대인들은 여전히 다른 신을 찾고 있습니다. 자신이 신이 되기를, 욕심이 신이 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창조주이심을 믿습니까? 걱정을 버리십시오. 예수님이 구원자이심을 믿으십니까? 근심을 버리십시오.  벌써 2014년 2월을 맞이하였습니다. 하나님을 믿으시고 근심 걱정을 버린 행복한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근심과 걱정은 때때로 믿음을 마비시키고 양심을 마비시키고 죄를 짓게 만듭니다.

평생 동안 하나님을 찾지만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는 것은 최대의 비극입니다. 자기의 욕심을 신으로 섬기는 것이 아니라 우주를 만드신 하나님을 찾아야 하고, 죄악된 세상에 하나님이 보내신 구원자 예수님을 찾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오늘 성경에서 충격적인 말씀을 하십니다. “너희는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24절)는 말씀입니다.  욕심을 버리지 못하면 하나님을 찾아도 하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찾지만 죄 가운데 태어나서 죄 가운데 살다가 죄 가운데서 죽는 것은 비극입니다.

욕심과 하나님 중 무엇을 선택하시겠습니까?
죄와 욕심은 당장 즐거운 것 같으나 결국 허무하게 끝이 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오늘 먹고 마시고 즐기자고 외쳐댑니다.  하나님은 너무 커서 보이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영원한 진리로 존재하십니다.  옛날 사람들은 지구가 네모처럼 생겼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배를 타고 멀리 가지 못했습니다. 끝이 보이는데 그 끝에서는 떨어진다고 생각했습니다.  너무 큰 것은 우리의 눈에 다 들어오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눈에 안 보이는 것은 그는 너무 크신 분이요 영이시기 때문입니다.  

욕심을 버리지 못하면 죄 가운데 죽게 되지만 하나님을 믿으면 진리 일게 되고 자유로워집니다.  32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이 말씀 가운데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두 단어가 있습니다.  하나는 진리요,  다른 하나는 자유입니다. 사람들은 진리를 탐구합니다. 사람에게는 자유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 두 단어처럼 잘 못 사용된 말이 없습니다. 진리가 아닌데 진리라는 이름 아래서 죄 없는 사람들이 핍박을 당하고 희생되었습니다. 자유가 아닌데 자유라는 이름 아래서 불의와 불법이 행해진 예가 너무 많이 있습니다.

반면에 이 두 단어 진리와 자유를 위하여 사람의 가장 고귀한 노력과 희생이 진행되어 왔습니다.  진리와 자유를 위한 교회, 진리와 자유를 위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진리를 위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하였습니까? 자유를 위해서 얼마나 많은 젊은이들이 피를 흘렸습니까?

진리와 자유는 우연히 오는 것이 아닙니다. 진리는 자유를 가져옵니다.  
그럼 진리는 무엇입니까? 진리란 말은 한문으로 참된 이치, 참된 원리라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진리라는 말은 참된 것이라고 번역할 수 있습니다.  

그럼 참이란 것은 무엇입니까?
참이란 비슷한 것과 비교할 수 있습니다. 산이 있다면 그림자가 있습니다. 산은 참이고 그림자는 비슷한 것입니다. 사람이 있고 사진이 있습니다. 사람은 참이고 사진은 비슷한 것입니다. 많은 어른 중 부모님 같이 사랑해 주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부모님은 한 분이십니다.  참이란 항상 실체를 의미합니다.  
참이란 거짓과 비교될 수 있습니다. 누렇다고 다 금이 아닙니다. 진자 금과 가짜 금이 있습니다. 요즘처럼 짝퉁이 많은 시대에는 무엇이 참이고 거짓인지 구별하기 어렵습니다. 가짜가 더 진짜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세상 살아가면서 꼭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건 세상은 기회만 주어지면 우리를 속이려 하고, 끊임없이 우리를 속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어두운 세상의 권세 잡은 악한 영은 거짓의 영입니다. 거짓의 영인 마귀에게 속한 세상은 진실하고 정직하게 살아가려 하는 우리에게 늘 걸림돌이 됩니다. 우리를 힘들게 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거짓과 진리가 싸우면 반드시 진리가 이긴다고 가르쳐줍니다. 불의와 정의가 싸우면 정의가 승리하고, 빛과 어둠이 싸우면 어둠이 물러가고 빛이 이긴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정직하게 살면 반드시 축복을 누리게 하시고, 우리에게 세상 높이 들리운 등불처럼 은총을 베풀어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살아가는 삶은 언제나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이 우리의 경험입니다. 거짓과 진리가 싸우면 거짓이 더 기승을 부리고, 거짓이 승리의 개가를 부르는 것 같은 상황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우리가 사는 세상을 ‘불합리와 부조리한 세상’이라고 말합니다.  정직하게 사는 사람이 어려움을 당하고 억울한 누명을 쓰고 일찍 세상을 더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성경에서도 우리가 사는 세상을 불합리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시37편에서 “악한자를 인하여 불평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악한 사람들이 출세하는 것을 보면서 그들처럼 살고 싶다는 잘못된 생각을 가져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어둠의 권세 잡은 자들이 주관하기 때문에 그런 불합리한 일들이 일어나게 되어있습니다. 예수님은 마귀를 “거짓의 영” 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귀는 거짓말하는 영이고 거짓이 승리하는 것 처럼 보여 사람들로 하여금 거짓에 순종하도록 유혹하는 영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느 어떤 경우에도 타협하거나 거짓에 넘어가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마귀는 거짓말로 아담과 하와를 유혹했고, 거짓으로 이 세상을 유혹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아름다운 에덴동산에 아담과 하와가 행복하게 살고 있었습니다. 그 아름답고 행복하던 에덴동산에 거짓의 아비인 마귀가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거짓으로 하와를 꼬드겨서 하와로 하여금 범죄하게 만들었습니다.

거짓으로 꼬드겨 하와를 범죄자로 만든 바로 그 마귀는 오늘도 우리를 거짓으로 꼬드겨서 하나님을 떠나 마귀의 종노릇하는 비참한 자리로 끌어가기 위해서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믿음으로 승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우리를 유혹하는 거짓말하는 영의 거짓에 속아 넘어가지 말아야 합니다.

왜 많은 사람들이 거짓이 나쁘다는 것을 알면서도 거짓에 넘어갑니까? 하와가 왜 마귀에게 넘어가 죄를 짓고 말았습니까? 거짓은 우리를 속일 수 있는 몇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는 잘못된 확신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가장 큰 힘은 진실에 있습니다. 진실은 세상 그 무엇으로도 무너뜨릴 수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그런 강력한 ‘진실의 성’을 무너뜨리는 것이 있는데 그게 바로 거짓입니다. 거짓은 진실에 비하면 아주 작아 보이고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그게 진실이라는 거대한 성을 무너뜨리는 작은 구멍을 만들어냅니다.

구약 창세기 3장에 보면, 뱀이 하와를 죄에 빠지게 하기 위해서 잘못된 확신을 심어 주었습니다. 1절에서 하와를 찾아온 뱀이 이렇게 질문을 던집니다.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그리고선 4절에서는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는 확신을 심어 줍니다.  

“너희는 결코 죽지 않아. 마음 놓고 따 먹어.” 거짓에는 거짓만의 힘이 있습니다. 오히려 진실보다 더 확실한 것처럼 보이는 확신이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거짓에 유혹되고 넘어갑니다.

하와는 하나님의 말씀보다도 뱀의 거짓말이 더 확실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뱀의 거짓말을 따라 하나님께서 금하신 선악과를 따 먹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오늘도 거짓의 영인 마귀는 거짓된 확신을 가지고 우리를 유혹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이 진리를 붙잡지 않으면 무너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완전무장하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두 번째로 거짓에는 우리의 마음을 빼앗을 만큼의 과장이 들어 있습니다. 그 과장된 것에 현혹되어서 거짓에 넘어가고 맙니다. 사람들이 거짓인줄 알면서도 빨려 들어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뭔가 엄청난 것을 얻을 수 있을 것만 같기 때문입니다.

뱀이 하와에게 이렇게 말을 합니다. “너희가 이 선악과를 따 먹으면 네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분별하는 탁월한 능력을 소유하게 될 거야.” 아마도 뱀이 “너희가 이 열매를 따 먹어도 절대로 죽지 않아”라는 말만 했다면, 아담과 하와는 선악과를 따먹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선악과를 따먹으면 하나님처럼 된다’고 말하니까, 그 말에 혹해서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절대로 하나님처럼 되지 않는데도, 하나님처럼 된다고 과장광고를 한 것입니다. 어리석게도 하와는 그 거짓말에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말씀을 붙잡고 말씀에 따라 사는 것이 거짓의 유혹을 이기는 최선의 방법입니다.

거짓의 유혹에 넘어가 인생은 그 인생 자체가 거짓으로 치장된 허구의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거짓된 인생은 삶의 가치나 보람이 없는 처절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행복을 상실하고 맙니다. 그게 거짓이 우리에게 안겨준 비극적인 결과입니다. 유혹할 때에는 엄청난 것들 줄 것 같지만, 유혹에 넘어가면 그 결과는 비참한 것입니다.

‘선악과를 따 먹으면 눈이 밝아져 하나님처럼 될 것이라’는 마귀의 거짓에 속아 넘어간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처럼 되는 영광을 얻은 것이 아니라, 아름답고 행복한 에덴동산에 쫓겨나고 고통 속에 살아가야 하는 비극적인 삶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프랑스의 작가 모파상(Henri Rene Albert Guy de Maupassant, 1850∼1893)이 쓴 “진주 목걸이”라는 단편소설은 거짓이 우리에게 얼마나 비극적인 삶을 살게 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가난한 관리의 아내 마틸드는 남편의 상사인 교육부 장관의 파티에 초대되는 행운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초라한 모습으로 갈 수 없어서 친구의 진주 목걸이를 빌려서 목에 걸고 파티에 갔다가 친구의 진주 목걸이를 잃어버렸습니다. 가난하지만 예의 바른 미틸드 부부는 친구의 목걸이와 똑같은 진주목걸이를 사 주기로 합니다. 그러나 진주 목걸이는 엄청나게 비싼 것이어서, 집을 팔고 재산을 처분하고, 그래도 모자란 돈은 은행에서 빌려서 친구의 것과 똑같아 보이는 진주 목걸이를 사다가 친구에게 주었습니다. 물론 잃어버려서 새 것을 샀다고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두 부부는 은행에서 빌린 돈을 갚기 위해서 죽도록 고생을 하다가 10년 만에 빚을 다 갚을 수가 있었습니다. 죽도록 고생한 마틸드는 그 10년 사이에 너무 늙어버렸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목걸이를 빌려주었던 그 친구를 만나 10년 전 진주 목걸이의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 때 그 친구가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 난 그것을 전혀 몰랐네. 내가 너에게 빌려준 것은 진짜가 아니라 진짜처럼 생긴 가짜였다네.”
결국 가짜를 진짜로 알았던 마틸드 부부는 진짜 같은 가짜 때문에 10년 동안 죽도록 고생만 했습니다.

여러분, 그게 거짓에 빠진 우리 인생의 모습입니다. 하와를 거짓으로 유혹했던 마귀는 오늘도 우리를 찾아와 거짓에 현혹되어 거짓의 종이 되도록 유혹합니다. 거짓의 종이 되면 굉장히 화려하고 아름다운 삶을 살 수 있을 것같이 유혹합니다. 그러나 거짓은 우리에게 행복을 주지 않습니다. 절대로 거짓에는 행복이 없습니다.

여러분, 세상이 우리를 거짓으로 유혹할지라도 말씀에 굳게 서서 진리를 따르는 주의 백성들로 사시기를 바랍니다. 세상이 거짓으로 나를 속일지라도 우리는 진리 편에 서서 정직과 진실함으로 세상의 등불처럼 사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진리 안에 있는 온갖 은총과 축복이 우리의 삶에 가득하게 될 것입니다.

진리,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유하고 행복한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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