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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학교 설교시간에 목사님께서는 아이들에게 현실감있는 체험을 해주기 위해서 실제로 십자가 형틀에 굵은 못을 준비하고 큰 망치로 십자가에다 못을 박습니다. 꽝! 꽝! 꽝!
내 몸에다 못을 박는것처럼, 듣는 사람들이 섬뜻할정도로...
모든 어린이들이 숙연하게 보는 모습을 보고 목사님은 더욱더 감동적이게 하려고 더욱더 세게 세게 망치로 못을 박습니다.
어린이 여러분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신 예수님은 얼마나 아프셨을까요?
아무 죄도 없으신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죄를 짊어지시고 이렇게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셨습니다.
목사님은 제일 감동적으로 보고 들은 한 유치부 어린이에게 물었어요. 예수님은 누가 십자가에 못밖았지?
그 어린이는 아무 말이 없었어요.
목사님은 생각했어요.
아! 이 어린이는 정말 예수님의 고통을 함께 체험한 어린이구나.
생각하고는 또 질문을 합니다.
괜찮아! 말해봐.
계속 물어도 이 어린이 말을 못하는 거예요.
목사님은 꼭 이 어린이한테는 듣고 싶은 답변이 나올것 같아서 계속 묻습니다.
아냐! 괜찮아 말해봐
계속 말하라고 묻자 이 어린이는 울먹이기 시작했어요.
목사님은 생각했어요.
세상에 어린 것이 얼마나 감동을 받았으면 눈물까지....
아냐! 괜찮아 울지말고 말해봐 응.
이 어린이는 엉엉 울기 시작했어요.
아이고 그렇게까지 울지 않아도 되는데...
그래 그래 울지말고 말해봐..
누가 십자가에다 예수님을 못박았지 ??
엉엉 울면서....
"목사님이요....."  


제가 영적인 변화, 마음의 변화를 경험한 때는 십대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마음을 만져 주심으로 죄에 대한 깨달음과 부끄러움이 있었습니다.  죄를 용서 받고 나서는 매일 매일 기쁨으로 살았습니다.

교회를 다녀도 마음의 변화, 영적인 변화가 없었을 때는 죄를 버릴 수 없었습니다. 오늘 날 십자가를 버린 채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십자가에 대하여 무관심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십자가를 통하지 않고는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으로 세상을 구원하십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만 버림받은 세상을 구원하십니다.  하나님의 불타는 사랑을 알게 하는 것도 십자가입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5:8).

십자가의 감격 속에서만 세상의 헛된 것을 버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점점 십자가를 잊고 살아갈까요?

저는 특별히 특기와 장점이 없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좋아하는 것이 있습니다. 가슴이 뜨거운 사람들, 거친 세상의 풍파 속에 시달리면서도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위하여 불꽃 같이 사시는 분들을 좋아합니다. 가슴이 불타는 사람들에게는 거친 세상을 이겨 나가는 힘이 있습니다.

거친 세상을 이기고, 갈등하는 마음을 이기는 것이 거룩함이요 하늘의 힘입니다. 불꽃처럼 사는 사람들의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십자가의 신앙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영적으로 깊이 체험한 사람들입니다. 불같은 시험을 이기는 강함과 꿋꿋함은 십자가에 대한 체험입니다.

십자가는 내가 어떻게 강하게 살아야 하는지 알려주는 표입니다. 그들은 성공에 미친 것이 아니라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에게 집중되어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평범하지만 그들에게는 평범하지 않은 힘이 있습니다. 그것이 십자가입니다.

나를 향한 불타는 하나님의 사랑을 십자가에서 체험하였기에 강한 믿음으로 믿음을 방해하는 것들과 싸워 승리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는 특별한 종교가 없어도 선하게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향한 사랑 때문에 죄와 슬픔이 가득한 세상에서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입니다.

오늘 모든 분들이 십자가의 사랑을 받고 강하고 거룩하게 살기를 바랍니다. 강한 믿음의 사람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십자가의 주님을 만나지 않고서는 예수님을 믿을 수 없습니다. 십자가의 주님을 만나지 않고서는 하나님을 알 수 없습니다.

70여년 전 중국 만주에 80개의 교회를 세운 이름 없는 여성이 있었습니다.  일제치하에서 만주 땅에 80여개의 교회를 세운 이 여인은 목사님도 전도사님도 아니었습니다. 남편을 잃고 홀로된 여성신자였습니다.  요즘은 돈으로 교회를 세우지만 그분은 가난했기 때문에 오직 기도로 교회를 세웠습니다. 이 동에 저 동네를 다니다가 배가 고파지면 소똥을 개울가에서 씻어서  소화되지 않은 옥수수 알갱이들로 굶주린 배를 채우고 교회를 80여개를 세웠습니다.


옛날 성경책은 가장자리가 붉은 색이었습니다. 그것은 순교의 피를 의미합니다. 성경을 펴서 읽을 때마다 이 복음이 순교자들의 피 뿌린 헌신을 통해서 전해졌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는 의미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금색으로 칠한 성경이 유행하고 있습니다. 고난과 희생 보다 성공과 번영이 이 시대의 믿음이라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아픔니다.

100년 전에 영국의 브리스톨에 살았던 성도 엘리자베스 시실리아 클리페인(E. C, Clephane)은 십자가의 체험을 이렇게 노래하였습니다.

내 눈을 밝히 떠서 저 십자가 볼 때
날 위해 고생 당핫긴 주 얼굴 보인다
그 형상 볼 대 내 맘에 큰 찔리 받아서
그 사랑 감당 못하여 눈물만 흘리네

십자가와 불 같은 믿음은 나뉠 수 없습니다. 십자가가 없으면 냉랭하게 지만 십자가의 예수님을 만나면 뜨거운 가슴으로 살아갑니다.

지금도 고난과 핍박의 현장으로 달려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누가 가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의 영혼 안에 역사하는 십자가의 복음입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에 대한 사랑이 그들로 십자가와 관계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을 사랑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예수님을 만났습니까? 그 예수님을 만나지 않고서는 믿음 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십자가를 통해서만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요1:18) 십자가의 경험이 없으면 믿음이 불안할 뿐입니다.

십자가의 예수님을 만났다면, 여러분의 가슴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불같이 타오르고 있습니까? 하나님이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에게 주신 것은 세상 보다 강한 힘입니다. 죽음 보다 강한 힘입니다 . 그 힘으로 세상을 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주신 것은 세상 보다 약한 것이 아닙니다.  세상 보다 강한 믿음이 아니면 그것은 참 믿음이 아닙니다.  순간을 살아도 영원을 위하여 사는 강한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십자가는 죄인을 죽이는 한 방법이었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로마인이 야만족이던 시절에 만들어낸 처형 방법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십자가야말로 사람이 만들어낸 가장 고통스러운 사형방법이라고 말을 합니다. 그 당시에도 십자가는 평범한 죄수들이 아니라 아주 극악한 죄인들을 죽이기 위한 방법이었습니다.

로마인들도 이것이 얼마나 심한 사형 방법인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 로마의 죄인들에게는 이 십자가 형벌을 주지 않았습니다. 로마가 지배하는  나라 중에 죄질이 나쁜 사람들에게만 적용하였습니다.


십자가의 사형을 받기 전 두 가지 형벌이 있습니다.
1. 채찍으로 매를 맞는 것이고
2. 자기가 매달릴 십자가를 지고 사형장까지 가는 것이었습니다.

신약시대의 로마인들이 사용하던 채찍은 한 줄로 된 기다란 채찍이 아니라 여러 가닥으로 이루어진 채직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채찍 각 가닥 끝에는 날카로운 쇠붙이나 짐승의 뼈를 각아 만든 뾰족한 것들이 달려 있어서 죄인들이 그 채찍에 맞을 때는 몸에 채찍이 감기고 살점이 찢어지게끔 만들어졌습니다.

십자가의 무게는 보통 150Kg 정도였다고 합니다.  이렇게 무거운 십자가에 사람을 매달아서 하늘 높이 세운 다는 것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십자가의 두 개의 막대 중 세로 막대를 먼저 땅에 박아 세우고 그 다음 가로 막대에 죄인을 눕히고 못을 박았습니다. 그 못은 크고 굵고 강한 못이었습니다. 그리고 가로 막대에  못 박은 죄수를 도르레 같은 것을 이용해서 세로 막대 꼭대기로 끌어올려서 그 위에 끼워서 십자가를 만들고 세로 막대에다 발을 못 박는 그런 형태였습니다.

로마의 초기에는 못을 죄수의 손바닥 중아에 박았지만, 죄인이 손바닥이 찢어지면서 시체가 형틀에서 떨어지는 경우가 있어서 후일에는 이 같은 일을 막기 위해서 손목 가까운 곳에다 못을 박았습니다. 그래서 동맥을 건드리게 되었고 죄수들의 몸에서 많은 피가 흘러나오게 되었습니다.

더욱이 예수님의 머리에는 커다란 가시나무로 만들어진 면류관이 씌워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그 분을 돌로치고, 주먹으로 때리고, 침을 뱉고, 욕했습니다.  이분의 모든 고난은 우리의 죄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 잔인한 십자가의 형벌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얼마나 커다란 진노의 대상인지를 알게 합니다.

십자가 형벌의 잔인함은 십자가에 매달리 죄수가 곧 죽지 않는데 있습니다. 십자가의 죄수가 생명이 있는 한, 죽을 때까지 고통을 받게 하는 것이 이 십자가 형벌의 잔인함이었습니다.

팔레스타인의 뜨거운 햇볕 아래서 십자가에서 못박혀 찢어진 손과 발에서 서서히 피가 빠져 나가면 고열과 함께 땀이 흐르고 머리가 터지는 듯한 두통이 찾아옵니다. 살인적인 통증입니 다. 그래서 십자 위의 죄수들은 기절했다가 깨어나고 깨어났다가 기절하면서 서서히 죽음을 맞이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이런 십자가의 죽음을 죽으셨던 것입니다. 죄로 죽은 우리를 살리시려고 죄 없으신 그 분이 그렇게 죽으셨던 것입니다. 우리의 받은 구원은 그 분의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을 통해서 이루어졌습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우리는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사 53: 4-6)

주님은 지옥을 넘나드는 고통 가운데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뜻과 십자가에 달리시는 당신의 마음과 뜻을 알려주고 싶으셨습니다.  십자가의 그 큰 고난 가운데서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해골이라 하는 곳에 이르러 거기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고 두 행악자도 그렇게 하니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아버지여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23:33-34)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남기신 첫 말씀은 하나님 아버지께 올린 기도였습니다. 그 큰 고통 속에서도 죄인들을 위하여 하나님의 용서를 구하는 간절한 기도를 하였습니다.

자신은 십자가에서 지옥의 고통을 당하면서도 예수님의 관심은 죄 사함을 받지 못하고 살아가는 우리의 비참한 처지에 있었습니다.

23장 앞부분에는 죄 없으신 예수님이 빌라도에게 사형 언도를 받으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사람들은 말도 안되는 죄목으로 예수님을 고소하였습니다. “백성을 미혹하고 사이사에게 세 바치는 것을 금하고 자칭 왕이라 하더이다”(눅23:2)

우리를 구원하러 오신 예수님을 강도와 같은 부류의 한 사람으로 여기며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백성들은 서서 구경하며 관원들도 비웃고 군인들도 희롱하고 네가 만일 유대인의 왕이 어든 네가 너를 구원하라”(눅23:35-37)

어리석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사랑을 이렇게 비웃고 있던 때에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은 첫 번째 유언을 하시기 위하여 조용히 입을 여셨습니다. 그 유언은 중요한 기도였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향한 간절하고도 목메이는 유언이었습니다. “아버지여 저들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자신들을 구원하러 오신 주님을 세상은 이렇게 대접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도 세상이 예수님께 행하고 있는 일입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미움과 분노로 십자가에 못박은 바로  “그 때에”  예수님은 이 유언을 하셨습니다. 당신을 못박는 죄인들을 용서해 주시도록 말입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서 삼십삼년을 사셨지만 자신을 위해서 무엇을 챙겨두지 않으셨습니다. 그 분은 모든 것을 우리를 위해 쓰셨고 당신이 구원하실 그의 백성 외에는 아무것도 그 분의 것은 없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십자가의 길을 오르실 때에 겉 옷 한 벌 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마져 로마 군병들에게 빼앗겼습니다. 그는 마지막 남은 한 벌의 같옷도 세상을 위해 벗어주고 맨 몸으로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이제 마지막 남은 것은 일평생 우리를 섬겨 주시던 당신의 몸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몸마져도 우리를 위하여 깨뜨리며 한 벗는 모욕과 고통을 받으셨습니다.  죽으시면서 마지막 남기신 말씀이 기도였다는 사실은, 이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며 메마른 심령으로 살아가는 우리에게 큰 찔림이 됩니다.  그 불 같은 고통 속에서 예수님께서 행하신 마지막 섬김은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시는 일이었습니다.

“아버지여”

주님의 기도 가운데 가장 먼저 들려 온 말씀은 “아버지”의 이름이었습니다. 그 고통 속에서 예수님은 자신의 고통이 아니라 자신을 바라보시는 아버지 하나님을 바라보고 계셨습니다.

“아버지여” 그 처절한 고통 속에서도 주님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고백하며 하나님과 함게 하고 계셨습니다. 몸이 짖어지는 고통도, 지옥을 넘나드는 고통도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사이를 갈라놓을 수 없었습니다.

자신이 십자가를 지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주님은 아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위해 당신에게 고통을 주시는 하나님을 친밀한 아버지라고 부르고 계십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믿음을 봅니다.

예수님께서 요단강에서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실 때 하늘에서 들려오던 음성이 잇었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라”(마3:17). 사단이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마4:3)이라고  주님을 시험할 그 때에도 하나님이 아버지시라는 주님의 믿음을 약화시킬 수 없었습니다.

너무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아버지”라는 이 복스러운 믿음을 붙들고 살아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인생은 늘 불안하고 믿음도 불안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유혹이 있을 때마다 하나님께서 아버지가 아닌 것처럼 살아갑니다.

우리의 영혼 한 복판에는 우리의 마음이 있습니다. 만일 우리의 마음에 십자가를 향항ㄴ 사랑이 불타고 잇다면 우린은 후퇴하는 믿음의 삶을 살 수 없을 것입니다. 어떻게 얻은 구원인데 , 주님을 십자가에 못박게 한 것이 우리의 죄와 허물인데 우리가 어떻게 주님을 욕보일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십자가를 안다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십자가가 항상 멀다면 하나님과 먼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십자가 사랑에 불 꽃 같은 감격이 있다면, 하나님을 위하여 불꽃처럼 살 수 있는 것입니다.

한 때는 예수님 곁에 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말씀을 원하던 사람들, 배고프던 사람들, 병 고치기를 원하던 사람들..... 그러나 지금은 그 사람들이 다 떠나갔습니다. 몇 명의 여인들이 눈물을 흘리며 십자가 아래가지 따라 왔지만 제자들에게도 버림 받으셨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런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 아버지와의 관계를 누리고 있습니다.

몸은 십자가에 달리셨지만 그 분의 마음은 사랑하는 아버지와 하나되었고, 고난이 더할수록 그의 영혼은 더욱 뜨겁게 아버지와 하나 되었습니다.

저는 이 시간에 주님이 저 십자가 높이 달리셨을 때 “아버지여...”하고 부르셨다는 사실에 마음이 뜨거워집니다. 몸이 찢어지는 고통 속에서도 아버지와 하나 되었던 아들을 보면서 우리는 회개합니다.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분은 하나님 아버지입니다.  그 관계는 끊어질 수 없습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란이나 곤고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그 무엇도 그 사랑에서 끊을 수 없느니라”(롬8:35) 환경이 끊을 수 없는 하나님 아버지와 하나됨. 죄악된 세상에서 승리하며 살아갈 힘은 오직 거기로부터 나옵니다.

“아버지여” 예수님은 최고의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과 말할 수 없는 친밀함을 누리고 있습니다.   영광스러운 성전도, 화려한 궁궐도 아닌 고통의 십자가 위에서 하나님을 “아버지여.....”하고 부르고 계십니다.

여러분이 지금 어떤 형편에 계시는지 다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스스로 물어 보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디에 있든지 하나님을 마음 깊이 “아버지”하고 부르고 계십니까? 마음이 하나님 아버지와 하나 되고 있습니까? 기도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있습니까? 말슴 속에서 찬양 속에서 하나님의 마음이 느껴집니까?

세상을 이길 힘은 우리 안에도 없고 세상에도 없습니다.  우리로 하여금 거룩하고 구별되게 살 수 있게 하는 힘은 오로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저희는 자기가 하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주님은 이 기도를 하시려고 아버지의 이름을 부르셨습니다.  그것은 죄 사함의 문제였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용서를 필요로 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지음 받은 존재이지만 하나님을 생각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죄사함이 얼마나 필요한지 모르고 있습니다.

예수님게서 죽어가면서 남기신 첫 마디의 간절한 기도는 예수님이 이 땅에서 하나님께 올리셔야 했던 가장 급한 기도였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에게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문제는 죄사함입니다.

죄에 대한 하나님의 용서가 없으면 그가 누구든지 불붙는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을 뿐입니다. 사람들은 니름대로 자기의 삶에 골몰하고, 자기를 괴시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가 누구이든지, 그가 어느 시대의 사람이든지 사람은 모두 동일합니다. 세상에는 모두 한 종류의 사람 밖에 없습니다. 그들은 모두 죄인들일 뿐입니다.

“저희의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이 문제는 인생 그 자체 보다도 중요합니다. 죄용서는 가장 급한 인생의 문제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 죄사함을 받았습니까?“ ”예“라고 대답할 수 없으면 여러분의 인생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렇습니다. 나는 죄사함을 받았습니다“라고 대답하는 것 보다 더 중요한 말은 세상에 없습니다.

예수님의 고통은 모두 우리의 죄 값을 치르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다 양같아서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사53:6)

주님의 십자가의 고난은 우리의 죄악을 짊어지신 고난이었습니다. 우리와 조상들과 후손들의 조든 죄를 짊어지시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죄를 지은 것처럼 아버지의 진노를 감당하고 계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인이 우리들에게 퍼부으셔야 항 부들부들 떠는 진노를 예수님에게 쏟고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죄 때문에 예수님이 그렇게 고난을 당하시면서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도록 기도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죄인을 향해서 오래 참으시는 분입니다. 그러나 영원히 참으시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거룩한 일입니다. 예순미은 지금 그 심판을 미리 당하고 계셨습니다. 우리의 죄 때문입니다. 그리고 온 마음으로 죄인을 향하여 부들부들떠시는 아버지께 기도드리고 계시는 것입니다.

아직도 죄 사함을 받지 못한 분들은 마음을 다하여 이 두려운 하나님께 죄 사함을 받아야 합니다. 죄사함 없이는 천국에 갈 수 없습니다. 인생은 무가치 할 분 아니라 진노 아래 있습니다.

예수님의 이 기도 속에서 우리가 기억해야될 것이 마지막 하나가 있습니다. 죄인들을 용서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랑으로 죄 사함 받앗습니다. 잠시 이 세상에 살면서 영원 속에서 살며 천국을 바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를 사랑하면서 사시기를 바랍니다. 십자가에 붙들린 사람, 마지막 승리를 얻을 때가지 십자가를 사랑하며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혀가 굳고 피가 식을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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