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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06 22:10

부활절 새벽 미명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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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절 새벽 미명에

21:3-4, 14-17

 

 

수 백 만 명의 사람들이 땅을 부셔도 봄은 찾아옵니다.

지금으로부터 131년 전 1884년 갑신정변이 일어난 조선 한국의 정세는 매우 불안하고 혼란스러웠습니다. 당시 국제 사회는 조선 한국을 소망 없는 은둔의 땅으로 보았습니다. 그러나 황무지이기 때문에 더욱 복음이 증거되어야 한다고 믿었던 미국의 젊은 선교사들이 있었습니다. 언더우드와 아펜젤러였습니다. 그들은 순교의 각오로 파송을 자원했습니다.

 

188545일 부활절. 거센 풍랑을 헤치고 한 척의 배가 인천 제물포항에 도착했습니다. 단순한 입항이 아니었습니다. 이 나라에 처음으로 복음이 들어오는 감격스러운 순간이습니었다. 그렇게 부활절에 언더우드와 아펜젤러는 조선땅을 밟았고 황무지에 소망의 빛이 비치는 순간이었습니다. 아펜젤러는 본국에 보낸 첫 선교 보고서에서 이 날의 감동을 이렇게 밝혔습니다. “우리는 부활절에 이곳에 왔습니다. 그날 사망의 철창을 쳐부수고 부활하신 주님께서 조선의 결박을 끊어주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빛과 자유의 세계로 인도해 주시기를 기도했습니다.

 

세상을 변화시킨 기독교의 힘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입니다. 기독교는 역사적으로 수없는 박해와 도전을 만났지만 언제나 위기를 부활의 정신으로 이겼습니다.

 

부활신앙은 기독교의 핵심이고 신앙의 초석이며 변화된 삶의 원동력입니다. 그 어떤 슬픔과 공포, 회의와 실망, 고통과 상처도 부활의 사실을 믿고 부활의 능력 가운데 살며 부활 복음을 증거하는 그리스도인들을 침노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체험하는 감격의 부활절이 되기를 바랍니다.

 

많은 종교가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기독교가 좋습니다.

변화의 기회를 주기 때문입니다.

 

죄인에게 당연히 돌을 던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변화의 기회를 줍니다.

큰 사랑입니다.

 

인간은 감정의 동물입니다.

상처 받기 쉽습니다.

한 번 받은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습니다.

특히 정신적 고통은 평생 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고통은 죽음 보다 괴롭습니다.

 

고통은 경험을 남깁니다.

고통스러울 때는

자기보다 더욱 고통스러운 사람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라고

프랑스의 화가 고갱은 말하였습니다.

고통은 내 정신의 깊이와 힘을 알게 합니다.

 

기독교는 부활을 강조합니다.

변화되지 않은 죄인을 다시 살리면 세상은 온통 지옥이 될 것입니다.

죄인을 죄인으로 부활시키는 것은 지옥의 시작입니다.

부활은 죄인을 변화시키고

의롭게 살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천국의 시작입니다.

 

기독교가 그렇게 강조하는 부활은

모든 사람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축복입니다.

 

예수님뿐만 아니라 우리도

온통 돈과 명예와 욕심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산다는 것이 고통입니다.

 

친구처럼 가까운 사람에게 받은 상처

선을 베풀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함

그 정신적인 충격은 말로 다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부활의 기본은

나로 인하여 고통 받는 사람들을 살리는 것입니다.

그 고통을 정지시키는 것입니다.

고통을 계속주고 부활을 외치는 것은 잔인한 것입니다.

 

부활은 그렇게 고통 속에 죽은 자를 살리는 것입니다.

나로 인하여 고통 받는 자를 평안의 상태로 회복시키는 것이

부활의 정신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실 때, 3번이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저주하며 부인했던 베드로의 모습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절망 속에서 살았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하고 절망 속에 있었던 것처럼 지금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런 절망을 안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이 어둠은 사랑의 빛 앞에서 힘을 잃게 되는 것입니다. 갈릴리 바닷가에서 베드로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을 때 모든 것이 변화되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 말씀이 이 이야기입니다.

 

절망의 짙은 어두움

 

3절 말씀을 같이 읽겠습니다. “시몬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하매 저희가 우리도 함께 가겠다 하고 나가서 배에 올랐으나 이 밤에 아무 것도 잡지 못하였더니

 

배에 올랐으나 이 밤에 아무것도 잡지 못하였더니베드로의 마음속에는 절망의 짙은 어두움이 있습니다. “이 밤에라는 단어가 베드로의 어두운 마음을 표현해 주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제자였습니다. 그러나 비극적인 실패를 3번이나 했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하고 저주했던 그 밤부터, 베드로의 삶은 울음으로 가득한 어두운 밤이었습니다. 그의 영혼에서 다시는 태양이 떠오르지 아니했습니다. 어두운 밤뿐이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제자 중 가장 우수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실패했습니다. 그가 누리고 있던 권세는 큰 것이었습니다. 그는 수 년 동안 예수님과 함께 거하면서 동고동락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체험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드로는 실패했습니다.

 

베드로의 이 실패는 오늘날 우리를 돌아보게 합니다. 우리는 많은 은혜를 누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이 변화되고 마음과 생활이 축복을 받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련과 환란이 베드로에게 닥칠 때에 베드로는 끝까지 피 묻은 예수님의 얼굴을 바라보기 보다는 자기의 얼굴에 상처가 나지 않을까 더 염려하며 예수님의 얼굴을 외면하여 버렸습니다. 어두운 밤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는 어두움 속에서 쓰디쓴 울음을 울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는 예수님에게 위대한 신앙고백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실패했습니다. “다른 제자들은 다 버릴지라도 나는 언제든지 버리지 않겠습니다라고 굳게 맹세했던 베드로이지만 그의 삶도 다른 사람들과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여러분의 믿음이 입술의 고백이 아닌 생명의 고백이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원하시는 분은 아멘이요. 다같이 입술의 고백이 아닌 생명의 고백이기를 바랍니다믿음을 지키지 못하면 절망과 어두움 속에서 울게 되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진지하게 믿음을 고백했지만, 그 믿음에 어긋나는 행동을 했으며, 그가 사랑한다고 말한 예수를 모른다고 부인한 것입니다. 우리 중 누가 이 베드로에게 돌을 던질 수 있겠습니까?

 

베드로는 이 어두움을 이기지 못하고 옛 생활로 돌아갔습니다. 베드로는 그의 마음에 어두움을 가진 채, 옛날 그의 직업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옛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가 버렸던 고깃배도 거기에 있었고, 그물도 있었고, 옛 친구들도 거기에 있었습니다.

 

그가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버렸던 것들을 다시 찾아갔고, 이제 그의 삶은 옛 생활이 되었습니다. “나는 물고기를 잡으러 가노라고 말하며 갈릴리로 돌아갔습니다. 때때로 우리의 마음이 어려우면, 예수님 믿는 것이 힘들다고 느끼면 옛 생활이 우리를 유혹합니다. 옛날 방식으로 사는 것이 더 편안한 것 같습니다. 옛 생활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떠오른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이 모든 일들을 포기해 버리고 다시 고기를 잡으러 가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옛 생활로 돌아간 베드로, 옛 생활이 기대했던 것과는 달랐습니다. “ 이 밤에 아무 것도 잡지 못하였더니라고 하였습니다. 불쌍한 베드로입니다. 그에게는 아무것도 제대로 되는 일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따르는 일도 실패했고, 옛 생활로 돌아 왔지만 실패했습니다. 실패는 그의 운명이었습니다. 그는 아무 것도 잡지 못했습니다. 그는 옛 생활로 돌아갔지만 아무 것도 되는 것이 없었습니다. 기대했던 행복은 사라져 버렸습니다.

 

4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날이 새어갈 때에 예수께서 바닷가에 서셨으나 제자들이 예수신 줄 알지 못하는지라

 

그러나 베드로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베드로처럼 실패와 절망 속에 있는 분들이 있습니까? 지금이 끝이 아닙니다.

 

 

새벽

 

 

날이 새어갈 때에 예수께서 바닷가에 서셨으나라고 하였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날이 밝아지는 새벽에 그 실망의 바닷가에 찾아오셨습니다. 마음속에 어두움이 짙게 깔려있던 베드로에게 소망의 빛이 비추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처럼 아름답고, 시적인 장면은 성경에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예수님에게 실망을 안겨 드리고 옛 생활로 돌아와서 또 실패한 베드로에게 소망의 빛이 다시 비쳐오고 있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두 발은 새벽에 베드로가 실패한 그 바닷가의 모래를 밟고 있었으며, 그것은 어두운 베드로의 영혼을 찾아오시는 것이었습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어두운 인간의 마음의 문턱을 넘어오시는 것입니다.

 

갈릴리 바다에 떠오르는 아침 햇살이 어두움을 내쫓는 것처럼,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나타나셨을 때에는 베드로의 마음속에 있는 어두움이 추방되었습니다.

 

실패자에게도 다시 찾아오시는 부활하신 예수님께 감사하십니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회개하는 영혼들을 내어 쫓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새로운 용기를 부어주시며, 그들과 교제하시고, 그로 하여금 다시 봉사할 수 있게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세 가지 일을 주목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찾아 오셔서 다시 희망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자신의 연약함으로 인한 실패를 인식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세 번이나 물으셨습니다. 베드로는 제발 그것만은 예수님께서 묻지 아니하시기를 원했을 것입니다. 너무나 부끄러운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때때로 마음이 상한 자에게, 실수하고 실패한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옵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슬쩍 넘기시는 분이 아닙니다. “내가 주님을 사랑합니다라고 외칠 때까지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과 양심을 찾아 오시는 분입니다.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묻는 것은 크나큰 고통이었습니다. 만약에 예수님을 모른다고 하지 않았더라면, 예수님을 저주하지 않았더라면...... 그러나 그것은 돌이킬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날이 새어갈 때에 예수께서 바닷가에 서셨으나그 옛날 실패한 베드로를 찾아 가셨던 예수님께서 여러분을 찾아오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3번씩이나 배신한 베드로를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도 다시 실패한 베드로를 찾아 오셔서 그를 영접하셨으며 그에게 사랑을 주시며 베드로로 하여금 다시 섬기는 삶을 살도록 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갈릴리의 어두움뿐만 아니라 베드로의 마음의 어두움까지 추방하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베드로가 믿을 수 없는 사람처럼 보였겠지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그를 다시 찾아 오셔서 그에게 새로운 새벽빛을 비추어 주셨습니다. 오늘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여러분에게 새 소망, 새 힘을 주시길 원합니다.

 

어둠이 물러간 다음에 새벽이 왔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찾아와 주심으로 실패자 베드로에게 새로운 인생이 주어진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과 단 둘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네가 나를 이 사람들 보다 더 사랑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과거의 비극적인 사건을 기억하고 있던 베드로는 겸손하게 주여, 그러합니다. 내가 주님을 사랑합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똑같은 질문을 세 번이나 반복했습니다. 이것은 베드로가 주님을 세 번 부인했던 것을 기억나게 하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사랑합니다. <필레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주님을 향한 뜨거운 사랑과 열정이 있습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베드로의 말에 과거의 건방짐과 교만이 사라지고 믿음직함과 겸손함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실패한 자기를 찾아오신 부활의 예수님을 만남으로 그의 인생이 다시 시작된 것입니다. 이런 베드로가 주님을 뜨겁게 열정적으로 사랑하고 있다면 어린양을 먹이라, 네 양을 치라고 말씀하십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베드로에게 과거의 베드로와 같이 믿음이 어리고, 마음이 어린 사람들을 잘 돌보라고 말씀하십니다. 아직 성숙하지 않은 영혼들이 잘 자랄 수 있도록 꼴을 먹이고 잘 돌보라고 말씀하십니다. 믿음이 연약한 어린양들을 잘 양육하고 돌보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이것이 부활하신 예수님의 부탁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실패자 베드로를 찾아오심으로 베드로는 다시 주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었습니다. 분만 아니라 부활하신 예수님에게 새로운 명령을 받았습니다. 여기에 놀라운 은혜가 있습니다. “내 어린 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 내 양을 먹이라이것은 하나님의 은혜의 모습입니다. 누가 하나님의 양을 돌봅니까? 사람입니다. 실패와 절망을 체험했던 사람을 다시 일으키셔서 사용하시는 분이 부활하신 예수님이십니다. 온 세상이 정죄하고 추방했던 사람을 주님께서 다시 하나님의 일을 맡기신 것입니다. 어린양을 먹이는 것, 어린 양을 돌보는 것은 부활하신 주님의 명령입니다.

 

자기 입으로 저주하고 욕을 퍼부었던 사람을 누가 좋아하겠습니까?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은 그 베드로를 다시 찾아와 주셨고, 그를 용서하셨고, 그에게 부활의 영을 부으셨고 , 그에게 영적인 전쟁을 준비하도록 명령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주님, 실패와 절망 속에 있는 우리를 찾아오신 주님께 내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고백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바라며 내 어린양을 먹이라고 명령하심을 따라서 어린교회, 어린 성도들을 잘 보호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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